국편은 상하이 시 당안관(당案館·기록보관소)에 파견된 김광재 편사연구사가 최근 상하이도서관에서 이 창간호를 찾아냈다고 밝혔다. 4면으로 구성된 이 신문은 임정의 기관지로 서재필이 1896년 4월 7일 국내에서 창간한 ‘독립신문’과는 다르다.
임정이 발행한 독립신문은 △1919∼1926년 상하이에서 총 198호가 발행된 국한문판 △1922∼1924년 상하이에서 발행된 중문판 △1943∼1945년 충칭에서 발행된 중문판 등 세 종류다. 상하이 중문판은 약 40호 발행됐으며 중국의 관공서, 사회단체, 교육기관 등에 무료 배포됐다. 박은식이 주필을 맡아 중국인 기자들을 채용해 제작했다. 논설, 한국정보, 중국통신, 일본소식, 각국통신, 잡보, 문원(文苑) 등으로 이뤄졌고 한국인의 독립운동과 일본의 만행을 알리는 데 지면을 할애했다.
이 신문은 창간사에서 자금난으로 국한문판 발간도 어렵지만 현지에서 한국의 독립운동을 알리는 일이 시급하다는 취지에서 중문판을 발간한다고 밝히고 있다. 국편이 풀어쓴 창간사에는 ‘우리 독립 혈쟁(血爭)의 진상을 발표하고 적인(敵人)의 불의불법(不義不法)을 성명(聲明)하여 여론을 환기하고 조응공기(造應空氣)하는 데는 반드시 언론기관에 의지해야 하는 고로 독립신문이 발행됐다’고 적혀 있다.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의 김주용 연구위원은 “중문판 창간사를 확인함으로써 독립의 당위성을 알리려 한 임정의 의지와 노력을 명확히 알 수 있게 됐다”고 평가했다.
정진석 한국외국어대 명예교수는 “중국을 무대로 독립운동을 펼치면서 중국어 신문을 냈다는 사실은 독립운동사뿐 아니라 한국언론사에서도 의의가 크다”면서 “창간호가 발견됨으로써 신문의 성격과 지향점 등을 파악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금동근 기자 go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