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뢰로 짝퉁커피 추적
한달만에 제조공장 찾아내
민간자격증 딴 500명 활동
7일 새벽 충북 옥천역에서 10분여 외곽으로 벗어나자 산자락에 5000m² 규모의 한 커피공장이 눈에 들어왔다. 일반인에게는 이른바 ‘사설탐정’으로 더 알려진 ‘PI(Private Investigator·민간조사원)’ 유우종 씨(45)는 “이 커피공장이 바로 동료들과 함께 추적해 온 곳”이라며 속삭였다.
유 씨와 동료 PI들은 한 달 전부터 이 커피공장을 찾기 시작했다. “유사상품이 나도는 것 같으니 이를 알아봐 달라”는 한 베트남산 커피 수입사의 의뢰가 들어온 것. 다행히 베트남 커피의 인기를 타고 인터넷에서 거래 중이던 유사상품을 찾아낼 수 있었다. 유 씨가 그 상품을 통해 추적한 이 공장에는 얼마 지나지 않아 압수수색영장을 발부받은 경찰도 도착했다. 유 씨에게서 정보를 얻은 의뢰인이 고발 조치를 취하자 수사기관이 출동한 것이다. 공장을 뒤지자 생산해놓은 80여 박스의 커피와 진품 브랜드의 마크 및 글씨까지 그대로 베낀 포장지, 박스 등이 줄줄이 발견됐다.
현장 증거를 수집하던 유 씨는 “사실 다른 사건에 비하면 약과”라며 웃었다. 최근에 그를 가장 진땀 빼게 했던 사건은 한 보험사기. “의심 가는 환자가 있다”는 보험회사의 의뢰에 따라 유 씨는 병원에서 잠복을 하면서 교통사고로 목, 척추 등 온몸에 깁스를 해 4500만 원의 보험금을 타낸 한 30대 남성을 지켜봐야 했다. 그렇게 2주, 보험회사 직원들이 병원을 떠나자 그 환자가 깁스를 풀고 헬스클럽으로 향하는 현장을 잡아냈다.
하지만 이들 민간조사원들의 탐정 일은 쉽지 않다. 수사 권한이 없는 데다 사생활 침해 등 현행법에 가로 막혀 있기 때문. 따라서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잠복과 같은 고전적 수법을 많이 사용한다. 정확한 언급은 피했지만 유 씨와 같은 민간조사원의 사건당 수임료는 1000만 원 안팎.
현재 민간조사원 과정이 개설되어 있는 곳은 경성대, 한세대 평생교육원, 한국민간조사협회 등 3곳. 교통사고, 사이버범죄, 보험범죄, 조사방법, 지문감식 등 8주간의 교육을 마치고 자격시험을 치러야 한다.
한국민간조사협회에 따르면 현재 유 씨와 같이 민간자격증을 따고 PI로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은 약 500명. 사실상 탐정 역할을 하는 심부름센터와 흥신소까지 합하면 3000명이 넘는다. 그러나 구체적인 탐정관련 법률은 없다. ‘신용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은 탐정이라는 용어 사용을 금지하고 있으며 민간조사원을 규정하는 특별한 제도도 없다. 몇 차례 법제화 노력이 있었지만 번번이 성과를 내지 못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부작용은 점점 커지고 있다. 2005년엔 심부름센터 직원이 7000만 원을 받고 생후 70일 된 영아와 엄마를 납치·살해한 일이 발생했고 최근 배우 전지현 씨의 휴대전화를 기획사에 감시용으로 복제해준 곳도 심부름센터였다. 대불대 경찰학과 이동영 교수는 “민간조사의 업무 범위를 어디까지 제한할 것인지 등 복잡한 문제가 많다”면서도 “현실적인 수요가 늘어나고 있는 만큼 법제화 논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장윤정 기자 yunj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