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문-강금원-박연차
2007년 8월 서울에서 만나
퇴임후 활동자금 문제 논의
퇴임 이틀 전인 2008년 2월 22일
500만 달러 연씨 계좌에 입금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조카사위 연철호 씨 계좌에 500만 달러를 송금한 2008년 2월 22일을 전후한 상황을 살펴보면 노 전 대통령이 돈을 요구했고 이 돈이 노 전 대통령의 것으로 의심할 만한 정황이 많다. 특히 연 씨가 박 회장을 만나 500만 달러 송금을 요청할 때에 동석한 노 전 대통령의 아들 노건호 씨의 행적은 ‘500만 달러 의혹’을 푸는 데 중요한 단서 중의 하나다.
○ 3자 회동에서 500만 달러 송금까지
노 전 대통령의 오랜 친구이자 최측근인 정상문 전 대통령총무비서관은 2007년 8월 서울 S호텔 식당에서 박 회장과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을 만났다. 세 사람은 이 자리에서 노 전 대통령의 퇴임 이후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대통령 재단’을 설립하는 문제와 자금 조달 방안을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강 회장은 박 회장에게 “50억 원씩 내자”고 제안했고 박 회장은 “홍콩 계좌에 있는 500만 달러를 가져가라”고 했다. 정 전 비서관은 이날 논의 내용을 노 전 대통령에게 보고했으며 이후 박 회장과 노 전 대통령 사이에서 돈 전달 방법 등을 조율하는 ‘징검다리’ 역할을 한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3자 회동 직후인 2007년 9월 강 회장은 50억 원을 투자해 ㈜봉화를 설립한다. “퇴임 후 마을의 숲과 생태를 복원하고 싶다”던 노 전 대통령의 바람에 따라 설립된 봉화는 사업 목적을 농촌자연관광사업, 생태 및 문화보존 등으로 밝혔지만 아직까지 별다른 사업을 벌이지 않고 있다. 강 회장은 나중에 20억 원을 더 투자했다.
그해 11월 정 전 비서관은 박 회장의 소재를 찾게 된다. 이때 박 회장은 베트남에 나가 있었고 정 전 비서관은 박 회장의 측근인 정승영 정산개발 사장을 통해 “연 씨가 500만 달러 문제로 박 회장을 찾아갈 것”이라고 주선한다.
연 씨가 2007년 12월 베트남으로 가 박 회장을 만났고 500만 달러 송금 움직임은 구체화된다. 연 씨가 박 회장을 만나는 자리에는 당시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경영학석사(MBA) 과정을 밟고 있던 노 전 대통령의 아들 노건호 씨가 동석했다. 박 회장은 이때의 상황에 대해 검찰에서 “500만 달러는 노 전 대통령 쪽의 ‘애들’이 받아갔다”고 진술한다.
연 씨는 한 달 뒤인 2008년 1월 조세회피지역인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주소지를 둔 창업투자회사 ‘타나도 인베스트먼트’를 설립했다. 이어 노 전 대통령의 퇴임 이틀 전인 같은 해 2월 22일 박 회장의 홍콩 계좌에서 500만 달러가 연 씨의 홍콩 계좌로 송금됐다.
○ 노건호 씨 행적, ‘500만 달러 미스터리’ 푸는 열쇠?
박 회장과 노건호 씨 측은 모두 연 씨와 함께 만난 적이 있다고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구체적인 시기와 만남의 성격 등에 대해서는 양측의 주장이 엇갈리고 있다.
박 회장은 검찰에서 “2007년 12월 노건호 씨와 연 씨가 함께 찾아와 ‘500만 달러를 보내 달라’고 요청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노 씨가 자신을 찾아온 이유가 송금 요청 때문이라는 것이다. 반면 노건호 씨는 연 씨와 함께 박 회장을 찾아간 것은 맞지만 500만 달러 송금을 요청하기 위해서 만난 것은 아니라고 밝히고 있다. 노건호 씨는 “2007년 말과 아버지의 퇴임 무렵인 2008년 2월 베트남에서 박 회장을 만났다. 첫 방문 때는 MBA 동문들과 함께, 이후에는 연 씨와 함께 갔다”고 밝혔다. 노건호 씨는 “해외에서 어떻게 사업에 성공했는지 배우기 위해 박 회장을 찾아갔지만 박 회장에게서 돈을 받은 적은 없다”고 주장했다. 자신은 연 씨가 박 회장에게 500만 달러를 송금해 달라고 요청한 2007년 12월 만남에는 없었으며 연 씨와 함께 박 회장을 만난 것도 송금 문제와는 무관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노건호 씨의 이 같은 해명을 그대로 믿기에는 석연치 않은 대목이 많다. 노건호 씨는 연 씨와 함께 박 회장을 만난 직후에 치러진 노 전 대통령의 퇴임 행사에 참석하지 않았다. 박 회장을 만나기 위해 학기 중에 베트남까지 찾아간 노건호 씨가 정작 아버지의 퇴임 행사에 불참한 것은 자신의 행적을 드러내지 말아야 할 이유가 있었던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을 낳게 한다.
노건호 씨는 MBA 과정을 마친 뒤 지난해 10월 LG전자에 복직해 현재 미국 샌디에이고 사무소에서 근무하고 있다. 노건호 씨는 8일(현지 시간) 아침 정상 출근했으나 오후에 일찍 퇴근한 뒤 연락을 끊고 외부와의 접촉을 피하고 있다. 노건호 씨는 9일 하루 휴가를 냈고 10일은 부활절 연휴여서 주말까지 출근하지 않을 것으로 알려졌다.
전성철 기자 daw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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