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당 7700달러꼴로
금융당국 감시망 피해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은 2007년 6월 말 노무현 전 대통령으로부터 “정상문 대통령총무비서관에게 100만 달러를 보내라”는 지시를 받은 뒤 정산컨트리클럽 등 자신의 회사 직원 130여 명을 총동원해 환전에 나섰다. 이는 이 100만 달러가 노 전 대통령의 해명처럼 “권양숙 여사가 ‘미처 갚지 못한 빚’을 갚기 위해 박 회장에게서 빌린 돈”이 아니라 돈이 오간 사실 자체를 감춰야 했을 이유가 있었음을 보여준다.
현행법은 외화 1만 달러 이상을 거래할 때는 이름, 주민등록번호, 주소, 연락처 등 자세한 신상 정보를 금융기관에 알려줘야 한다. 또 금융기관은 ‘의심할 만한 합당한 근거’가 있을 때 거래사실을 금융정보분석원(FIU)에 보고해야 한다. 100만 달러를 130명이 나누어 환전하면 1인당 7700달러꼴이기 때문에 이 같은 감시망을 피해나갈 수 있다.
이는 또 박 회장이 노 전 대통령으로부터 매우 급하게 돈을 마련해달라는 요구를 받았기 때문일 것으로 보인다.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가족이나 믿을 수 있는 소수의 측근을 통해 여러 차례에 걸쳐 적은 금액으로 나누어 환전하면 소문이 날 위험을 무릅쓰지 않아도 된다. 또 원화를 달러로 환전하는 대신 베트남과 중국에서 운영하던 사업체를 통해 직접 달러를 들여올 수도 있다.
원화 대신 달러로 돈을 건넨 것은 부피가 작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박 회장은 “100만 달러를 검은색 손가방 1개에 담아서 전달했다”고 진술했다. 만일 원화로 10억 원을 전달하려 했다면 골프가방 3개 이상의 부피가 되므로, 박 회장의 돈 심부름을 한 정승영 정산개발 사장 혼자서 나르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전성철 기자 daw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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