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호씨 2007년 중반 美서 10만 달러 투자
유학생 신분으로는 거액… 출처싸고 의혹
100만 달러 돈가방 청와대서 건넨 과정
이중삼중 검문 무사통과 ‘007 작전’ 방불
‘2007년 6월 말 노무현 대통령은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에게 전화를 걸어 정상문 대통령총무비서관에게 100만 달러를 보내라고 지시했다. 박 회장은 노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요구에 자신의 회사 직원들을 총동원해 부랴부랴 100만 달러를 마련했고, 이 돈은 청와대 안으로 보내져 노 전 대통령에게 전달됐다.’
대검중수부가 박 회장의 진술 등을 토대로 100만 달러가 노 전 대통령에게 건네진 과정을 밝힌 내용이다. 노 전 대통령은 왜 급하게 거액의 달러가 필요했을까? 아직 이 돈의 사용처는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당시 노 전 대통령의 동향을 살펴보면 어느 정도 의문이 풀리는 대목이 있다.
▽“100만 달러 검은 손가방에 담아 청와대 경내에서 전달”=10일 검찰에 따르면 박 회장은 노 대통령의 지시를 받은 직후 경남 김해시 지역의 금융기관에서 10억 원을 모두 달러로 환전했다. 박 회장은 100달러짜리 지폐가 100장씩 묶인 돈다발을 검은색 손가방에 담아 자신의 최측근인 정승영 정산개발 사장을 불러 정 전 비서관에게 건네도록 했다. 정 사장은 곧장 서울로 향했다. 정 사장은 이전에도 여러 차례 박 회장의 심부름으로 청와대를 다녀온 적이 있었다.
정 사장은 청와대 안에 있는 총무비서관실에서 정 전 비서관을 만나 직접 돈 가방을 전달했다. 금속탐지기와 X선 검색대 등 이중삼중의 검문절차를 통과해야 하는 청와대 안으로 거액의 달러가 담긴 가방을 소지한 채 무사히 들어간 것. 돈 가방을 건네받은 정 전 비서관은 노 전 대통령 부부가 거주하던 관저로 향했다.
여기까지는 박 회장과 정 전 비서관이 모두 검찰 조사에서 인정한 사실이다. 하지만 돈이 관저 안에서 누구에게 전달됐는지를 놓고 양측은 엇갈린 주장을 펴고 있다. 정 전 비서관은 “돈 가방을 권양숙 여사에게 건넸다”고 검찰에서 진술했다. 이는 노 전 대통령 측이 “권 여사가 ‘미처 갚지 못한 빚’이 있어 돈을 빌렸다”고 밝힌 것과 일치한다. 반면 박 회장은 100만 달러가 차용금이 아니며, 이 돈의 종착지는 바로 노 전 대통령이라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100만 달러, 어디에 쓰였을까=노 전 대통령은 박 회장으로부터 100만 달러를 건네받은 직후인 2007년 6월 30일 강원 평창군의 동계올림픽 유치를 지원하기 위해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가 열리는 과테말라로 출국했다. 노 전 대통령은 7박 8일 일정으로 과테말라를 다녀오는 길에 미국 시애틀과 하와이에 들러 현지 교포와 간담회를 가졌다.
검찰은 노 전 대통령 부부가 6월 30일 과테말라로 가는 중간기착지로 시애틀에 들렀을 때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유학 중이던 아들 건호 씨를 만났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시애틀까지는 비행기로 2시간 정도 걸린다. 노 전 대통령이 시애틀에서 건호 씨를 만난 것이 사실이고, 생활비나 다른 명목으로 100만 달러 또는 이 돈의 일부를 건넨 것으로 드러난다면 ‘미처 갚지 못한 빚’ 때문에 박 회장으로부터 돈을 빌렸다는 해명은 거짓이 된다. 노건호 씨가 2007년 중반 스탠퍼드대 경영학석사(MBA) 과정 동문이 미국에서 운영하는 벤처회사에 10만 달러를 투자했다는 얘기도 있다. 무급휴직으로 유학을 온 처지라는 점에서 10만 달러는 적지 않은 액수다. 검찰 안팎에서는 이 돈이 100만 달러와 무관치 않다는 얘기도 나돌고 있다.
100만 달러가 노 전 대통령이 동계올림픽 유치를 지원하면서 쓰인 비공식 활동자금이라는 추측도 있다. 노 전 대통령은 7월 1일부터 4박 5일간 과테말라시티에 머물면서 끊임없이 IOC 위원들을 접촉했다. 이 과정에서 노 전 대통령과 수행원들이 쓸 ‘실탄’이 필요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100만 달러의 사용처에 대해 노 전 대통령 측은 여전히 “대통령이 되기 전에 여러 지인에게 많은 빚을 졌는데 대통령이 된 마당에 이를 갚지 않을 수도 없어서 박 회장에게서 빌려 갚았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왜 굳이 달러로 돈을 받았느냐는 의문에는 이렇다 할 설명을 내놓지 않고 있다. 문재인 전 대통령비서실장은 10일 “(이 돈을) 검찰이 부정한 뇌물로 몰아가는 것은 무리한 수사”라고 검찰을 비판했다.
전성철 기자 daw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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