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교과서 뒤집어읽기]문학의 언어, 왜 일상어와…

  • 입력 2009년 4월 13일 02시 56분


“생활이 모자라는… 나는 밤속에 들어서서… 자꾸만 감(減)해간다…”

문학의 언어, 왜 일상어와 ‘한뿌리 다른 느낌’?

○ 생각의 시작

문학 작품에 쓰이는 말들은 어렵다. 그래서 일상의 언어와 ‘다르다’는 생각을 갖곤 한다. 특히 낯선 방식으로 표현된 시를 보면 그런 생각이 더 커진다.

『문(門)을암만잡아다녀도안열리는것은안에생활(生活)이모자라는까닭이다.밤이사나운꾸지람으로나를졸른다.나는우리집내문패(門牌)앞에서여간성가신게아니다.나는밤속에들어서서제웅처럼자꾸만감(減)해간다.식구(食口)야봉(封)한창호(窓戶)에더라도한구석터놓아다고내가수입(收入)되어들어가야하지않나. …(후략)…

[고등학교 문학, 이상 ‘가정’]』

참 이상한 시다. 띄어쓰기도 하지 않았고, ‘생활이 모자란다’거나 ‘제웅처럼 자꾸만 감해간다’는 표현은 그 뜻을 알기가 쉽지 않다. 이쯤 되면 문학의 언어는 일상의 언어와는 다르다고 할 만하다.

○ 뒤집어 보자!

결국 비유적 표현이나 ‘낯설게 하기’ 등의 방식이 문제인데, 문학만 이런 표현을 쓰는 것은 아니다.

『동풍(東風)에 얼음 풀리니 마른 나무가 봄을 만나도다. 작게 가고 크게 오니 작은 것으로 큰 것을 이룬다. 이월에는 반드시 귀자(貴子)를 얻는다. 큰일을 하고자 하는데 어찌 의심과 염려를 하랴.』

토정비결의 맨 앞에 나오는 내용인데, 진술 전체가 은유다. 이 은유적 진술이 예언 적중의 비결이기도 하다. “이월에는 반드시 귀자를 얻는다”는 표현을 일흔이 된 노인이 읽는다 하더라도 전혀 문제될 게 없다. 마치 귀한 아들을 얻는 것처럼 좋은 일이 일어난다고 해석하면 되기 때문이다. 이뿐만 아니라 일상어는 진부하다거나 문학은 참신하다는 생각도 편견에 지나지 않는다. 문학은 일상의 말 중에서 적확(的確)하고 효과적인 언어를 골라서 쓰는 것일 뿐이다.

『문학의 말이 딴 세상에서 온 것이 결코 아니며, 그렇다고 엽기적 사용도 아니라는 점을 확인하기 위해 이문구의 동시 ‘산 너머 저 쪽’을 보자.

산 너머 저 쪽엔/별똥이 많겠지

밤마다 서너 개씩/떨어졌으니.

산 너머 저 쪽엔/바다가 있겠지

여름내 은하수가/흘러갔으니.

이 중에 낯선 말이 있는가? 없다. 그렇다고 생각이 낯선가? 낯설면서 낯설지 않다. 우리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던 것이면서 오래 잊어버리고 있었던 생각이라는 말도 된다. … (중략) … 문학은 이것이다. 우리 모두가 생각하는 것, 그러나 까마득히 잊고 있던 것을 우리 모두가 쓰는 말로 다시 일깨워 주는 것일 뿐이다. 그러기에 문학의 언어가 일상어와 다를 리 없다.

[고등학교 ‘국어생활’, 지학사]』

○ 한 번 더 뒤집어 보자!

그러나 문학의 언어는 일상어와 다르다. 정확히 말하면 같으면서 다르다.

『그리고 침을 삼키고 “네”라고 커피만큼 작게 말했다.

― 동생들은 학교에서 다 돌아왔고요…….

고개를 끄덕거리며 그 다음에 “네.”

― 오늘 낮에 무엇을 하셨어요?

고개를 숙인 채 침묵.

― 빨래하셨어요?/침묵.

[소설, 김승옥 ‘다산성’]』

“커피만큼 작게 말했다”는 구절은 참 재미있다. 배경이 된 시대상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당시 물가는 많이 오르는 데 비해 커피 값은 올리지 못하는 상황이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커피의 양이 자꾸만 줄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표현은 의미를 넘어서는 재미를 얻는다. 또 대답을 보자. “고개를 끄덕거리며 그 다음에 ‘네.’ / 고개를 숙인 채 침묵. / 침묵.” 대답의 길이가 점점 줄어든다. 이것의 의도는 무엇일까? 그것은 대답하는 이의 심리와 연결된다. 상대의 말에 잘 대답도 못하고 점점 목소리도 기어들어가고 몸도 점점 오그라드는 듯한 인상을 준다. 따라서 문학어는 일상어를 쓰지만 그것을 넘어서는 무엇이 있다고 해야 한다.

사실 그것이 문학의 언어든 일상어든 같은 소재를 사용하기에 다를 수가 없다. 다만 미묘한 차이를 구별하는 단어의 선택, 표현의 정치(精緻)함 등이 내용을 풍부하게 만들고 효과를 드높인다. 중요한 점은 문학과 삶의 연관을 발견하고 즐거워하며, 그로 인해 문학을 더 사랑하게 되고, 그로부터 우리의 언어를 더욱 멋지게 사용하는 것이다.

정근의 청솔 아우름 통합논술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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