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사과문 후 “13억 모두 權여사에 전달”…정상문 말바꾸기 왜?

  • 입력 2009년 4월 13일 02시 57분


檢체포 직후 “내가 받아 개인적으로 써”

노무현 전 대통령이 7일 홈페이지에 “집사람(권양숙 여사)이 돈을 받았다”는 사과문을 올린 이후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이 건넨 돈의 종착점을 둘러싼 진실게임이 본격화됐다.

특히 정상문 전 대통령총무비서관이 사과문 발표 직후 자기가 박 회장에게서 받아 쓴 돈을 “모두 권 여사에게 전달했다”고 진술을 바꾸면서 ‘사과문이 노 전 대통령의 전략적 메시지’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사과문대로라면 정 전 비서관은 심부름만 했다는 얘기가 된다.

돈을 최종적으로 받은 권 여사는 공무원 신분이 아니어서 노 전 대통령은 물론이고 정 전 비서관까지 뇌물수수죄 적용을 피해갈 수 있다.

노 전 대통령은 정 전 비서관의 체포 직후 “집사람이 빚을 갚으려고 박 회장으로부터 돈을 빌렸다”는 내용의 사과문을 전격 발표했다. 이른바 ‘노무현 게이트’ 사건에 권 여사가 등장하는 순간이었다.

검찰에 따르면 정 전 비서관은 변호인 접견을 통해 노 전 대통령의 사과문 내용을 전해 듣고 진술을 번복했다고 한다.

서울역 주차장에서 건네받은 박 회장의 돈 3억 원을 개인적으로 썼다고 진술했다가 갑자기 “사실 이 돈은 권 여사에게 전달했다”고 말을 뒤집었다는 것. 또 청와대에서 박 회장의 측근인 정승영 정산개발 사장으로부터 건네받은 100만 달러도 노 전 대통령이 아닌 권 여사에게 갖다 줬다고 주장했다.

돈이 누구에게 전해졌는지 진술이 엇갈리고, 3억 원을 받았다는 정 전 비서관의 개인 비리 혐의도 불분명해지면서 서울중앙지법은 10일 정 전 비서관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검찰이 노 전 대통령과 ‘뇌물 공범’으로 청구한 영장에 대해 돈을 받은 ‘주범’에 대한 조사가 제대로 되지 않은 상황에서 박 회장의 진술만 믿고 ‘공범’으로 지목된 정 전 비서관을 구속할 수는 없다는 취지에서다.

결국 ‘2007년 6월 노 전 대통령이 박 회장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100만 달러를 요구했다’는 박 회장의 진술을 확보하고 있던 검찰은 권 여사의 등장으로 허를 찔린 셈이다. 돈의 종착지가 권 여사로 바뀌면 노 전 대통령은 법적 책임 소재를 두고 검찰과 다툴 여지가 커지게 된다.

노 전 대통령이 겉으로는 국민에게 사과했지만 사과문을 통해 검찰에 체포돼 있던 정 전 비서관에게 ‘메시지’를 보내 권 여사에게 책임을 돌리고 법의 심판을 피하려 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종식 기자 bel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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