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교육 현장 살펴보니…
경기도와 강원도 경계 근방인 경기 양평군 양평읍 양근리에 있는 양평고등학교. 이 학교 3학년인 성기운 양(18)은 1학년 때부터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단 한 번도 학원을 다녀본 적이 없다. 다닐 만한 학원도 없지만 기숙사와 학교에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문계 1등으로 서울대 진학을 꿈꾸는 기운 양이 학교에 내는 돈은 세 끼 식비를 포함해 월 30만∼35만 원. 지난해 ‘기숙형공립고’로 지정되며 교육과학기술부의 지원을 받게 된 양평고는 현재 91명인 기숙사생을 244명까지 늘릴 계획이다.
교과부는 지난해 8월 낙후한 지방 교육여건을 개선하기 위해 전국 농산어촌 지역의 82개 공립학교를 기숙형공립고로 지정했다. 12일에는 8곳을 모델학교로 선정해 학교 운영과 관련된 프로그램들을 시범 운영하도록 했다. 자연히 내년 본격적인 운영을 앞둔 기숙형 공립고의 운영 방식에 대한 관심도 점차 높아지고 있다.
○ 외부강사 초빙강의 많아
기숙형공립고의 가장 큰 특징은 ‘최우수학생’들에 대한 철저한 관리다. 양평고는 정규 수업 이후 오후 4시부터 자정까지 이어지는 ‘방과후학교-심화보충학습·튜터제-심야 자율학습’의 3단계 학습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심화보충학습은 15명 안팎의 소그룹으로 진행되는 국어 영어 수학 중심의 프로그램이다. 같은 시간에 진행되는 튜터제는 4, 5명의 최상위권 학생을 위한 프로그램이다. 우수 교사는 물론 유명한 외부 학원강사도 초빙해 최상위권 학생들의 욕구를 충족시켜준다는 계획이다.
경남 함양고도 최상위권 기숙사 학생들을 대상으로 ‘올림피아드반’을 꾸릴 방침이다. 수학, 과학 분야에 탁월한 학생 4∼6명으로 구성할 계획이며 별도의 비용은 없다. 강사는 함양군의 지원을 받아 박사급으로 영입할 예정이다. 유병주 교장은 “고난도의 수학 문제 1개를 붙들고 학생들이 밤을 새우는 모습을 학원이 아닌 학교 기숙사에서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주말이나 방학 때는 원어민 교사들에게 영어교육을 집중적으로 받을 수도 있다. 양평고는 지난 겨울방학부터 원어민 교사 1명이 돌아가면서 기숙사생 2, 3명과 1시간 동안 자유롭게 대화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전남 도초고도 신안군의 지원으로 원어민 부부 교사를 학교에 상주시켜 기숙사생을 대상으로 영어 회화 교육을 할 예정이다.
황원대 양평고 교장은 “양평군 내에서도 우수학생의 절반 이상이 서울로 전학을 가거나 주말이면 서울 지역에 있는 학원을 다니는 것이 현실”이라며 “기숙형공립고가 정착되면 이런 현상은 사라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 체력, 특기·적성, 맞춤식 교육
기숙사생들이 아침마다 요가나 태극권, 국선도, 운동장 달리기 등 체력 유지를 위해 단체로 운동하는 모습도 쉽게 볼 수 있게 된다. 기숙형공립고마다 기숙사 내에서 지나친 학습 경쟁으로 학생들의 체력이 떨어지지 않도록 각종 프로그램을 만들기 때문이다. 또 악기나 운동 등 특기·적성 교육도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함양고에서는 기숙사생들이 의무적으로 아침에 태극권을 연마하도록 했다. 태극권 수련은 자립형사립고인 민족사관고가 개교 초기 도입한 것으로 함양고가 이번에 벤치마킹한 셈이다. 대구 포산고도 인근에 있는 비슬산 산행을 통해 기숙사생들의 체력을 유지토록 할 계획이다.
양평고는 학교 운동부인 카누부가 전국 대회에서도 훌륭한 성적을 거두고 있는 점을 활용해 기숙사생들에게도 학교 인근에 있는 북한강에서 카누를 가르칠 계획이다. 색소폰이나 골프 요가 등도 배울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전남 보성고는 판소리로 유명한 지역적 특성을 활용해 ‘판소리 명창반’을 만들어 학생들이 고향에 대한 자부심을 갖도록 하고 있다. 인천 강화고 역시 ‘1인 1특기 계발 프로그램’을 통해 학생들이 악기는 물론 배드민턴 골프 등의 운동을 전문적으로 배울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
임준환 정선고 교장은 “기숙형공립고들의 프로그램 정도면 학교가 아닌 다른 곳에서는 월 100만 원이라도 경험하기 힘들 것”이라며 “기숙형공립고를 통해 ‘개천에서도 용이 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 가정 역할 대신하는 만큼 생활지도 강화
기숙형공립고는 주말과 방학을 이용해 명사 특강이나 인성교육도 강화할 계획이다. 기숙사 생활을 통해 교사-학생, 선배-후배 간 대화를 크게 늘리고 그동안 다소 유명무실했던 시골 학교의 학생 자치조직도 활성화할 방침이다.
경북 울진고는 기숙사생들의 자치 조직을 강화해 선후배 간 모범 기숙사생 선발, 벌점제 등을 도입해 기숙사 규율이 자율적으로 지켜질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전남 보성고는 주말과 방학을 이용해 기숙사생 대상 명사 특강을 실시하고, 진로지도 교사의 수시 상담을 통해 학생 개인별 ‘직업 지도(job map)’를 만들어 1학년 때부터 진로 탐색을 강화할 예정이다. 포산고는 이 지역 향교와 연계해 학생들의 예절과 인성 교육을 실시할 방침이며, 정선고는 노인요양원, 어린이 보호시설 등과 결연해 주말마다 기숙사생들이 봉사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기숙형공립고가 대부분 남녀공학인 점 때문에 생활지도는 다소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함양고는 아예 기숙사를 남학생동과 여학생동으로 구분해 짓고 있으며, 양평고는 신축하는 기숙사 전체에 RFID시스템(전파를 이용해 먼 거리에서 정보를 인식하는 시스템)을 도입해 학생들의 기숙사 건물이나 숙소 출입 등을 관리할 방침이다.
김기용 기자 kk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