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송 치닫는 탤크 논란

  • 입력 2009년 4월 15일 03시 05분


소비자 “석면 피해 60만원씩 배상하라”

제약사 “의약품 판매중지-회수 철회를”

국내 일부 화장품 등에 ‘석면오염 탤크(활석)’가 사용된 것에 대해 소비자뿐만 아니라 제조업체도 앞 다퉈 소송전에 돌입했다. 그러나 석면 피해는 잠복기간이 길게는 수십 년에 달해 당장 인체에 어느 정도 피해를 주는지 입증하기 힘들어 소송 성립 여부 등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소비자 정신적 피해 커”=웹 포털사이트 네이버 카페에 ‘석면 베이비파우더 피해자 집단소송 모임’은 최근 1차로 23개 가정 46명을 모아 국가와 파우더 제조사 등을 상대로 서울중앙지법에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고 14일 밝혔다. 배상액은 한 가정에 60만 원으로 정했다. 이 모임의 김효언 변호사는 “제조사가 석면 탤크에 대해 고지하지 않았고 정부가 관리감독을 소홀히 한 점, 소비자들의 정신적 충격 등을 감안해 위자료를 정했다”고 밝혔다.

환경운동연합도 8일 서울 종로구의 사무실에서 10여 명의 피해 접수자를 모아 1차 피해자모임을 열었다. 또 홈페이지를 통해 피해 사례를 모은 뒤 최근 파우더 제조사와 탤크 공급업체를 검찰에 고발하기도 했다. 환경운동연합 관계자는 “매일 수십 건씩 피해 사례가 들어오고 있으며 곧 집단 민사소송을 낼 계획”이라고 말했다.

▽제약업계 “이미지 실추”=제조사들도 국가를 상대로 반격에 나섰다. 한국제약협회는 14일 ‘석면 탤크’와 관련해 식품의약품안전청을 상대로 공동 소송에 나설 기업을 모집한 결과 모두 24개 업체가 이번 소송에 참여했다고 밝혔다. 이들 업체는 곧 식약청을 상대로 ‘석면 탤크 제품 회수 및 폐기 명령’을 철회해 달라는 가처분 신청 등을 낼 계획이다. 한림제약은 이미 이 같은 소송을 따로 서울행정법원에 낸 상황. 이와 함께 제품 회수 및 판매금지 처분을 받은 121개 제약사 중 58개사는 이날 식약청에 이의신청을 냈다. 회사 측은 “식약청이 발표한 탤크 사용 의약품은 현재 유통되지 않거나 유통될 우려가 없다”며 “이 같은 상황을 알면서도 사전 예고 없이 제품 회수 등에 나서 엄청난 피해가 발생했다”고 말했다. 제약업계 측은 제품 손해금액과 보험급여 중지, 기업 이미지 실추 등을 합쳐 업계 피해액이 1조 원 이상에 달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에 대해 식약청 측은 “일단 옥석을 가리기 위해 모두 회수한 것이며 3일 이후 탤크 기준 규격에 맞춰 생산한 제품에 대해 제약사가 석면 불검출 성적서를 제출하면 판매금지를 해제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피해 입증 어려워’ vs ‘정신적 피해 보상해야’=소비자와 제조사 간에 법적 쟁점은 크게 3가지다. △정부나 제조업체가 석면 오염 탤크에 대해 언제부터 어느 정도 알고 있었는지 △석면 탤크의 위험성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가 왜 늦어졌는지 △소비자에게 신체 정신 재산상 손해를 끼쳤는지 등이다.

소송에 참여하고자 하는 소비자들은 해당 제품을 구입한 증거(영수증)와 제품을 사용한 뒤 아토피, 피부질환 같은 부작용이 생겼다는 것을 입증할 진단서 등을 스스로 모아 제출해야 한다. 당장 직접적인 인체의 피해를 입증하기 힘들기 때문에 소송 과정에서 정신적 피해 보상 문제가 우선적인 쟁점이 될 가능성이 크다. 지난해 발생했던 대기업의 개인정보 유출과 관련한 집단소송에서는 20만∼70만 원 선에서 피해 보상이 이뤄졌다.

석면이 검출된 베이비파우더 제조사 보령메디앙스의 법률대리를 맡은 법무법인 세종의 박교선 변호사는 “석면 탤크로 인한 실제 피해 발생이 입증돼야 배상소송이 성립된다”며 “국가나 제조자 측의 위법성이나 소비자의 피해 발생이 아직 확인되지 않아 법적 다툼이 치열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이종식 기자 bell@donga.com

김현지 기자 nu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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