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이쪽으로 앉아보세요. 지난주 저희들이 왔을 때는 소화가 잘 안되시는 것 같았는데, 속은 이제 괜찮으십니까. 여기 소화제 드세요. 우선 혈압부터 재볼까요.”
11일 오후 대구 남구 대명동 강신귀 씨(83·여) 집 안방. 허름한 2층 양옥의 비좁은 방에서 지체장애인인 딸(60)과 함께 살고 있는 강 씨의 얼굴에 갑자기 생기가 감돌았다. 영남이공대 간호과 2학년 배태정(20·여), 양호은 씨(20·여) 등 2명이 직접 들고 온 의료기기와 의약품 상자를 방 한쪽에 놓은 뒤 손길을 분주하게 놀렸다. 이들을 맞이한 강 씨는 “매번 손녀 같은 학생들이 찾아와 혈압과 혈당을 재고 소화제도 먹여주곤 한다”며 “집안 청소도 해주고, 내가 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말벗도 돼줘 고마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할머니의 어깨를 5분가량 주물러 준 양 씨는 “문을 열면 할머니께서 ‘손녀들이 왔다’며 웃음으로 맞이하시고는 이야기보따리를 풀어 놓으신다”며 “가족 이야기를 많이 하시는 할머니가 ‘형편이 좋아지면 나도 남을 돕고 싶다’는 말씀을 자주 하신다”고 말했다. 배 씨는 “외롭게 살아가시는 노인들은 대부분 운동 부족으로 소화불량 증세를 보이곤 한다”며 “소화제를 꾸준히 복용하시게 하고 식사량을 조절하시도록 권유하면서 건강을 돌봐드린다”고 말했다.
영남이공대 간호과 학생들이 10년째 지역의 혼자 사는 노인들의 건강을 보살피고 있어 주위를 훈훈하게 하고 있다. 이 대학 간호과는 재학생들이 학교에서 배운 인술을 실습하고 이웃사랑도 실천토록 하기 위해 2004년 4월부터 이 봉사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해마다 90여 명이 참여해 그동안 학생 900여 명이 노인 400여 명을 대상으로 의료봉사활동을 했다. 간호과 학생들은 입학 후 1학기 때부터 2, 3명이 조를 짜 봉사활동 대상자를 선정한 뒤 졸업 때까지 돌본다. 각 조는 연간 30∼40회 혼자 사는 노인들을 찾아가 혈압, 혈당, 체온 측정 등을 한 뒤 봉사활동을 실천한다. 특히 외로운 노인들의 말벗이 돼 주기 위해 이야깃거리와 간식을 준비하는 일도 빠뜨리지 않는다.
이 대학 간호과는 다음 달 8일 어버이날에는 그동안 학생들의 의료 서비스를 받아 온 노인들을 대학으로 초청해 가슴에 꽃을 달아주고 선물을 증정하는 등 경로잔치를 겸한 건강증진대회를 열 계획이다. 학생들의 봉사활동을 꾸준히 지도해 온 간호과 정귀애 교수(여)는 “10년 가까이 학생들이 건강을 돌봐온 어르신들 가운데 상당수가 세상을 떠날 정도로 세월이 흘렀다”며 “어버이날이나 명절 때만 요란스럽게 열리는 일회성 봉사보다는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봉사활동이 절실하다”고 밝혔다. 그는 또 “어려움을 모르고 자란 학생들이 어르신들을 찾아뵙고 이웃사랑을 실천하며 많은 것을 느끼고 인간적으로 성숙해지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정용균 기자 cavatin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