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등급 한데 묶어 공개… “한반 1~20등 같이 분류한 셈”

  • 입력 2009년 4월 16일 02시 58분


곡성 옥과고 야간자율학습 전남 곡성군이 교육환경 개선사업에 매진한 결과 올해 2개 인문계 고교의 대학수학능력시험 언어영역 1∼4등급 성적이 2005년에 비해 27.6%나 높아졌다. 옥과고 학생들이 도서관에서 방과 후 야간 자율학습을 하고 있는 모습. 사진 제공 옥과고
곡성 옥과고 야간자율학습 전남 곡성군이 교육환경 개선사업에 매진한 결과 올해 2개 인문계 고교의 대학수학능력시험 언어영역 1∼4등급 성적이 2005년에 비해 27.6%나 높아졌다. 옥과고 학생들이 도서관에서 방과 후 야간 자율학습을 하고 있는 모습. 사진 제공 옥과고
주요내용-문제점

영역별 상위 20곳…도시 85%-군지역 15%
서울 충남 전남 제주…全영역 1~4등급 늘어

성적 나쁜 지역 비공개…개선대책 원천봉쇄
학교별 성적 드러나면…서열화 논란 커질듯

매년 전국 60만 명 가까운 수험생이 사활을 걸고 매달리는 대학수학능력시험. 누구나 최선을 다하지만 16개 시도마다, 232개 지역마다, 그리고 학교마다 성적 차이가 컸다. 1994학년도 입시에 도입된 이래 16년간 철저히 비밀에 부쳐졌던 지역별 수능 성적이 공개되면서 학력 격차는 객관적인 수치로 확인됐다.

○ 제한된 성적 공개

분석 대상은 일반계고(특수목적고, 자립형사립고 포함) 재학생에 한정했다. 언어, 수리(‘가’, ‘나’), 외국어 영역만 분석하고 선택과목이 많은 탐구영역은 제외했다. 실제 수능 성적은 9등급으로 나뉘고 표준점수도 주어지지만 이번 분석에서는 1∼4등급(40%)을 1그룹, 5∼6등급(37%)을 2그룹, 7∼9등급(23%)을 3그룹으로 나눠 3단계로만 분류했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각 그룹의 분포 비율을 16개 시도별로 공개하고 232개 지역별로는 공개하지 않았다. 교육과학기술부는 매년 이 같은 방식으로 수능 성적을 공개하기로 했고, 평가원은 성적 편차의 원인을 심층 분석하기로 했다.

○ 성적은 도시, 향상도는 지방

16개 시도별 성적을 보면 광역시들의 성적이 대체로 좋았다. 서울은 해가 갈수록 외국어영역만 1그룹 비율이 약간 늘어났을 뿐(2005학년도 39.3%, 2009학년도 42.7%) 나머지 영역은 중위권이었다. 도 단위는 대부분 성적이 안 좋았다. 충남과 전북은 5년간 1그룹 비율이 가장 낮은 영역이 각각 6개와 5개나 됐다. 충남은 대부분의 영역에서 3그룹(7∼9등급) 비율이 가장 많았다.

232개 시군구 단위로 쪼개서 5년 동안 1그룹 비율이 많은 상위 20개 지역을 살펴 보면 도시 지역의 우세가 두드러진다. 서울이나 광역시의 구 또는 시 지역이 영역별 상위 20개 지역의 85.5%를 차지한 반면 군 지역은 14.5%에 그쳤다.

5년간 언어 수리 외국어 영역에서 단 한번이라도 상위 20개 지역에 든 시군구는 65곳이었다. 모든 영역에서 5년 연속 상위 20개 지역에 든 곳은 없었다. 수리 ‘가’ 영역을 빼면 부산 연제구와 해운대구, 대구 수성구, 경기 과천시가 5년 연속 3개 영역에서 상위 20위 이내에 들었다.

성적 향상도를 보면 지방 지역의 약진이 눈에 띈다. 2005학년도와 2009학년도의 성적을 그룹별 비율로 비교한 결과 5년 만에 모든 영역에서 1그룹의 비율이 늘어난 곳은 서울, 충남, 전남, 제주가 꼽혔다. 제주와 충남은 3그룹의 비율도 전 영역에서 줄어든 것으로 확인됐다. 충남과 전남은 성적은 좋은 편이 아니지만 향상도 추이에서는 상당히 나아진 모습을 보였다. 반면 부산과 울산은 전 영역에서 1그룹 비율이 줄어들었다. 인천은 전 영역에서 3그룹 비율이 크게 늘어나는 문제점을 보였다.

시군구별로 향상도가 높은 상위 20개 지역을 꼽아보면 80개 지역 중 군 단위가 52개 지역으로 65%를 차지했다. 경북 울진군과 경기 의왕시는 전 영역에서 향상도 상위 20위에 들었다. 김정호 평가원 수능연구관리본부장은 “지역별로 성적이 차이가 나는 데에는 여러 원인이 있을 것”이라며 “이번 결과를 바탕으로 여러 기관이 종합적인 원인 분석을 시작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 성적 공개 배경

그동안 잇따른 학계의 요청, 정보 공개 청구, 심지어 소송에도 불구하고 수능 성적을 꼭꼭 숨겨온 교육 당국이 갑자기 성적을 공개한 이유는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소속 조전혁 의원(한나라당)의 정보 제공 요청 때문이다. 조 의원은 자유주의교육운동연합 공동대표를 맡고 있던 2006년 소송까지 제기했다. 물론 교육 정보 공개를 강조하는 현 정부의 정책 기조도 간접적인 배경이다.

지난해 9월 국회 교과위에서는 교과부 관리들조차 당황케 만든 소동이 있었다. 조 의원이 안병만 장관에게 수능 원자료 공개를 요구하자 안 장관이 “사회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면 공개하겠다”고 돌발적인 답변을 한 것. 수능 성적 비공개를 철칙으로 알던 교과부 관리들은 허겁지겁 수습에 나섰지만 공개 방침은 그대로 굳어졌다.

이후 공개 범위와 방식을 놓고 고심한 교과부는 지난달 16개 시도 및 232개 시군구 단위로 성적을 공개하되 국회의원만 평가원을 찾아가 열람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그래도 국회의원들이 자료를 유출시켜 ‘고교 서열화 논란’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은 여전히 남았다. 이번에 교과부가 평가원을 전면에 내세우고 ‘전문가 세미나’라는 형식으로 두루뭉술한 수능 성적 자료를 공개한 건 그런 사태를 막기 위한 ‘선수 치기’인 셈이다.

○ 한계와 향후 파장

이날 공개된 성적 자료는 학계나 국회의원들이 요구한 수준은 물론 교육 수요자들이 알고자 하는 정보와도 동떨어져 있다. 등급별 비율을 공개하지 않고 1∼4등급을 한데 묶는 등 3단계로만 공개했기 때문이다. 서울의 한 진학담당 교사는 “1∼4등급이라면 반에서 1등과 20등 하는 아이를 똑같이 분류한 것이나 마찬가지”라면서 “전혀 변별력이 없는 무늬만 성적 자료인 셈”이라고 지적했다.

시군구의 경우 상위 20개 지역만 공개한 것도 비판의 대상이다. 학업 성취도가 떨어지는 지역의 원인을 분석하고 대책을 만들겠다는 설명과 달리 성적이 나쁜 지역은 아예 숨겨버린 것이다. 학교 이름을 일절 공개하지 않은 것도 여론의 비난을 피하기 위한 행태라는 비판이 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판도라의 상자 속에 있는 서열화와 무한경쟁, 평준화 해체가 속도를 더할 것”이라며 비판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는 “공공기관이 정보를 공개할 때 지켜야 할 절차와 한계를 무시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이번 공개를 통해 특목고와 기숙형 고등학교들의 성적이 우수하다는 것이 입증됨에 따라 자율형 사립고, 기숙형 공립고 확대를 통해 교육 현장을 개혁하겠다는 정부의 계획은 힘을 얻을 수 있게 됐다.

김희균 기자 foryo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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