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 무풍지대가 몰고 온 굴욕… 학교간 경쟁 불 붙여라”

  • 입력 2009년 4월 17일 02시 56분


충남도교육청은 지난달 12일 충남 공주시 충남교육연수원에서 도내 고교 교장과 지역교육청 학무과장 등 328명이 참석한 가운데 ‘학력증진 방안 회의’를 열었다. 지난해 치러진 학업성취도 평가에서 하위권이었던 충남은 15일 최초로 공개된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에서도 최하위권에 머물렀다. 사진 제공 충남도교육청
충남도교육청은 지난달 12일 충남 공주시 충남교육연수원에서 도내 고교 교장과 지역교육청 학무과장 등 328명이 참석한 가운데 ‘학력증진 방안 회의’를 열었다. 지난해 치러진 학업성취도 평가에서 하위권이었던 충남은 15일 최초로 공개된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에서도 최하위권에 머물렀다. 사진 제공 충남도교육청
수능 전국 최하위 불명예 충남교육청 ‘절치부심 프로젝트’

교사 전문성 높이기 위해 ‘강의법 브랜드化’ 주문

수준별 이동수업 늘리고 학생들 강좌선택제 도입

《시행 15년 만에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이 공개된 다음 날인 16일 전국 시도 가운데 특히 성적이 낮거나 성적 향상도가 나쁜 교육청은 비상이 걸렸다.

교육 당국은 지역별, 학교별 수능 성적 차이가 나는 원인을 다각적으로 분석하기로 했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 한국교육개발원, 한국직업능력개발원 등 유관 기관 및 대학 연구소와 함께 변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지역의 사회경제적 수준의 영향, 교장의 리더십과 교사의 교육열 같은 학교 효과, 학교 유형에 따른 성적 격차 이유 등이 연구 대상이다.

다음 주부터는 국회의원들의 성적 열람도 시작된다. 평가원이 일반에 공개한 수능 성적 자료는 ‘가공’을 거쳤기 때문에 서열화 소지가 없지만 국회의원은 원자료를 통째로 열람하게 된다. 어떤 서열화 자료가 튀어나올지 예측 불가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야당 국회의원을 통해 자료를 확보한 다음 평준화가 더 우월하다는 것을 입증하겠다고 나섰다.

‘전교조 성향’의 국회의원들은 발 빠르게 성적 공개를 청구했다. 수능 성적을 둘러싼 또 한 번의 폭풍이 휘몰아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16일 충남도교육청 중등교육과에는 전화가 이어졌다. “자존심이 상해 죽겠다”는 교사들의 전화였다. 전날 공개된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에서 충남이 16개 시도 중 최하위권으로 드러나면서 불어닥친 후폭풍이었다. 두 달 전 기초학력 진단평가 결과 발표 때 받았던 전국 최하위의 충격에서 벗어나기도 전에 또 ‘한방’을 맞은 교육청은 일과가 시작되자마자 한석수 부교육감 주재로 비상회의를 열었다. 교육감은 수뢰 혐의로 수감돼 공석인 상태.

마침 이날부터 교육감 보궐선거 선거운동이 시작됐다. 부여 백제중 3학년 딸을 둔 김희선 씨(44·여)는 “어제 언론보도를 보고 ‘그렇다고 이사를 갈 수도 없고…’ 하는 생각부터 들었다”며 “교육 여건 향상에 힘써 충남에서 고교를 나와도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을 주는 분이 당선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 대부분 학교 경쟁보다 자조감

도 전체가 비평준화 지역인 충남에서는 공주 지역 학교가 가장 인기있다. 자립형사립고인 한일고를 비롯해 공주사대부속고, 공주고, 공주여고가 선의의 경쟁을 펼쳐 학생들 학력이 높기 때문이다. 충남과학고도 공주시에 있다. 공주시는 이번 발표 때 영역별 1∼4등급 상위 20개 시군구에 충남 지역에서 유일하게 포함됐다. 임재무 공주고 교장은 “해마다 신입생 중 3분의 1 정도는 공주 밖에서 온다”며 “사교육을 받기 힘든 지역 여건상 우수 학교 선호현상이 다른 지역보다 더 강하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 같은 ‘공주 쏠림현상’을 다른 지역에서 당연하게 받아들였다는 것. 한 면 소재지 고교 교장은 “어차피 우수한 학생은 외지로 나가기 때문에 지역 주민들도 명문대 진학에 큰 기대를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도교육청 관계자도 “대부분의 학교들이 우수 학생을 유치하려는 의지가 없다 보니 격차가 좁혀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일반계고 가운데 사립학교 비율이 낮은 것도 학교 간 경쟁을 떨어뜨리는 한 원인이다. 도내 전체에서 경쟁력을 갖춘 사립고는 재단이 한화그룹인 천안 북일고와 자사고인 공주 한일고 두 곳 정도다. 도교육청 관할 16개 시군 중 계룡시, 금산군, 보령시, 부여군, 청양군 등 5개 지역에는 아예 사립 일반계고가 한 곳도 없다. ○ ‘희망은 있다’

하지만 충남은 수능 성적 향상도가 전국 상위권이다. 몇 년 전부터 도교육청 차원에서 벌이고 있는 학력 신장 프로젝트가 자리 잡은 결과다. 우선 도교육청은 지역마다 경쟁력 있는 학교를 배치해 경쟁 분위기 조성에 나섰다. 농산어촌 우수고를 18곳 지정했고, 지역명문고도 4곳을 지정할 계획이다. 기숙형 공립고도 8곳 만든다.

또 교사들에게도 ‘잘 가르치기’ 경쟁을 유도했다. 도교육청은 학력을 끌어올릴 수 있는 교과 교습법을 공모한 뒤 우수 프로그램을 선별해 총 3억7000만 원을 지원한다. 우수 교습법은 교사 이름을 따 ‘김철수표 수업’처럼 불리게 된다. 자치단체도 장학사업을 통해 ‘지역 교육 경쟁력 기르기’에 나섰다. 아산시는 충남외고를 포함해 8개 일반계고를 대상으로 명문대 진학률, 우수 중학생 유치 실적에 따라 예산을 차등 지급하는 ‘명문고 육성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오채환 아산시청 교육복지팀장은 “고교 교육 경쟁력 강화도 중요하지만 우수 학생을 외부 도시로 빼앗기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며 “내신 상위 5%에 드는 중학생이 아산시내 고교로 진학할 수 있도록 장학제도도 마련해 두고 있다”고 말했다.

대전=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남녀공학 예상보다 성적 엉망

非공학 전환요구 급물살 탈 듯

고교선택제 앞둔 서울지역

남학생 기피현상도 맞물려

기숙사 운영 사립고 두각에

기숙형 공립고에 관심 쏠려

15일 공개된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 분석 결과 남녀공학 학교의 성적이 남학교나 여학교보다 낮은 것으로 나오자 그동안 반대 논리에 묻혔던 남녀공학 학교의 단성(單性)학교 전환 요구가 다시 표면화할 조짐이다. 특히 서울 지역은 2010학년도에 고교선택제가 실시될 예정이라 전환 움직임이 더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남녀공학인 서울 불암고(노원구 중계동)는 이미 지난해부터 남자 학교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이영수 교무부장은 “단성학교인 인근 대진고, 영신여고에 비해 학생과 학부모들의 선호도가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라며 “이번 수능 성적 공개로 전환 추진에 가속도가 붙게 됐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지역에 이어 학력 경쟁이 심한 노원구에는 남녀공학 학교가 서울시 전체 76개 가운데 11개가 있다. 단성학교 전환을 검토하는 학교도 그만큼 많다. 중3 남학생 자녀를 둔 노원구 주민 김민영 씨(43)는 “교사 임용, 각종 공무원 시험에서 남성이 여성들에 밀리는 것을 보면 학교에서도 똑같은 상황이 벌어질 것”이라며 “대학 진학에서 내신 성적이 중요한 만큼 남녀공학으로 보내기 싫다”고 털어놨다.

남녀공학 학교인 노원고 박대윤 교장은 “남녀공학이 인성 및 생활교육에 긍정적이고, 전근대적 사고를 개선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한때 선호돼 왔지만, 학력 부분에서는 약점이 드러났고 또 강점으로 제시된 부분의 효과도 미미한 것으로 보인다”며 “지역 여건이나 상황에 따라 단성학교 전환을 긍정적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남녀공학 학교가 논란에 휩싸인 반면 지난해 지정된 전국 82개 기숙형 공립고에 대한 관심은 더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수능 성적 공개로 전남 장성고, 경북 영양여고 등의 ‘기숙사 효과’가 확실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기숙사와 연계한 심야 자율학습, 주말과 방학을 이용한 수준별 보충학습, 최상위권 학생들을 위한 심화학습을 통해 성적 향상을 증명한 셈이다.

기숙형 공립고로 지정된 경기 양평고의 황원대 교장은 “기숙사를 갖춘 사립고가 이번 성적 공개에서 두각을 나타내면서 기숙형 공립고에도 관심이 쏠릴 것”이라며 “같은 형태의 기숙사를 운영한다면 사립고 못지않은 좋은 성적을 기대해도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역시 기숙형 공립고로 지정된 강원 정선고의 임준환 교장은 “전남 장성군이나 경남 거창군 등 시골 지역의 학력은 우수한 역량을 지닌 1, 2개 학교가 끌고 갈 수밖에 없다”며 “내년부터는 정선고가 이끌어 갈 정선군의 학력 신장에 주목해야 할 것”이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김기용 기자 k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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