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비방 글 방치한 포털, 배상 책임”

  • 입력 2009년 4월 17일 02시 56분


첫 확정 판결… 불법 명백한 경우 삭제 의무

명예훼손의 내용이 담긴 언론매체 기사를 인터넷에 선별 게재하고 이를 방치한 포털사이트에 대해 언론사에 상응하는 배상 책임이 있다는 첫 확정 판결이 나왔다. 특히 피해자가 삭제를 요청하지 않아도 불법성이 명백한 게시물에 대해 포털 측이 스스로 삭제할 의무가 있다는 점을 강조해 포털사이트의 무분별한 선별 게재 및 기사 편집 기능에 제동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영란 대법관)는 16일 김모 씨가 자신을 비방하는 내용의 기사와 게시물을 게재한 NHN과 다음, 야후코리아, SK커뮤니케이션스 등 4개 포털사이트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포털 측은 김 씨에게 총 3000만 원을 지급하라”는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김 씨의 여자친구는 2005년 4월 김 씨와의 관계를 비관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얼마 뒤 여자친구의 어머니는 ‘딸의 죽음이 김 씨의 학대 때문’이라는 내용을 미니홈피에 올렸고 글은 일파만파 퍼졌다. 몇몇 언론사가 이를 기사화해 포털사이트에 게재되자 김 씨를 비난하는 게시물이 넘쳐났다. 김 씨는 자신의 실명과 학교 등 개인정보까지 유출되자 포털사이트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원심 재판부는 “포털사이트는 기사의 배포 편집은 물론 유사 취재까지 가능해 언론매체에 상응하는 기능과 책임이 있다”며 명예훼손에 대한 책임을 인정했고 대법원도 이를 받아들였다.

대법원은 “피해자가 삭제 요구를 하지 않아도 포털사이트는 불법성이 명백하고 관리·통제가 가능한 경우 명예훼손에 해당하는 게시물을 차단 삭제할 주의 의무가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포털 측은 언론사로부터 제공받은 기사를 자체 기준에 따라 선별 게재해 왔음에도 진위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는 등의 핑계로 법적 책임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며 “이번 판결로 포털 측은 선별 게재를 피하고 기사에 대한 검색 기능만 제공하는 등 운영 방식을 바꿀 것으로 예상된다”고 판결 의미를 설명했다.

이종식 기자 bel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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