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8억 빼돌려… 홍성 광천금고 이사장 등 기소
“고객님 명의로 된 통장은 아예 없는데요?”
지난해 5월 중순 충남 천안시의 OO새마을금고 창구. 천안에서 돈을 쓸 일이 있어 만기가 된 정기예금을 찾으려던 김모 씨(충남 홍성군 광천읍)는 창구 직원의 말이 믿기지 않았다. 광천새마을금고에서 예금을 할 때 아무런 문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혹시 전산이 잘못된 것 아니냐”고 물었지만 이상이 없다는 답변이었다. 광천새마을금고에 알아보니 자신의 정기예금은 새마을금고연합회와 다른 전산망에서 관리되고 있었다.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 김 씨는 연합회에 이런 사실을 신고했다.
수사에 나선 대전지검 홍성지청은 광천새마을금고의 컴퓨터에 두 가지 금융 전산망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하나는 연합회 전산망, 다른 하나는 컴퓨터프로그램 업체에 의뢰해 자체 제작한 것이었다. 금고 측은 수시로 입출금하는 보통예금은 연합회 전산망으로 처리했지만 만기까지 돈을 잘 찾아가지 않는 정기예금은 자체망으로 관리하면서 돈을 빼 쓰고 있었다. 정기예탁을 하면 실제로 계좌가 존재하지 않는 ‘대포통장’을 지급했다. 김 씨가 천안의 OO새마을금고에 가져간 통장은 바로 대포통장이었다. 연합회에서 감사가 나오면 연합회 전산망을 보여줘 범행이 드러나는 것을 피했다.
수많은 서민과 가정에 피해를 준 이 별도 전산망을 금고 측은 ‘화목한 가정’이라고 이름 붙여놓았다. 서민들의 피땀 어린 예금을 빼돌린 범행에는 이사장 이모 씨(62)를 비롯한 임직원 4명과 직원 16명 등 임직원 모두가 가담한 것으로 밝혀졌다. 금고 측이 지난해 5월 말까지 자체망을 통해 횡령한 돈은 고객 5880명의 정기예금 1500억 원. 횡령 금액은 1500억 원이었지만 인출을 요구하는 고객에게 되돌려준 돈 등을 감안하면 실제 피해액은 168억 원이다.
검찰은 16일 이 씨 등 임원 4명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혐의로 구속기소하고 직원 16명은 불구속 기소했다. 앞서 연합회는 지난해 9월 이들 임직원을 파면하고 금고를 해체했다. 피해액 168억 원은 공적자금을 투입해 보전했다.
홍성=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