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률 “박연차 관련해 할 얘기도, 조사받을 일도 없다”

  • 입력 2009년 4월 18일 02시 58분


퇴임 석달… 美뉴욕주립대서 만난 한상률 前국세청장

검찰의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 수사와 관련해 ‘기획 출국설’ 등 각종 의혹을 받고 있는 한상률 전 국세청장(사진)은 “(태광실업에 대한 세무조사와 관련해) 검찰 등의 조사를 받을 일도 없고 아무런 할 얘기도 없다”고 밝혔다. 미국에서 만난 한 전 청장은 “제2의 인생을 설계하기 위해 이곳에 와 있다”며 “3년에서 5년 정도 공부한 뒤에 귀국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는 출국 이후 미국 캘리포니아 주 스탠퍼드대에 방문교수 자격으로 체류하고 있다고 알려진 것과 달리 뉴욕 주 올버니에 위치한 뉴욕주립대 ‘방문 연구원(visiting scholar)’ 자격으로 머물고 있었다. 뉴욕주립대 올버니 캠퍼스는 뉴욕 주 전역에 흩어져 있는 뉴욕주립대의 50여 개 캠퍼스 중 하나로 맨해튼에서 3시간 정도 떨어진 거리에 있다. 한 전 청장은 “국세청에 서기관으로 근무할 때 이곳에 단기 연수를 나온 적이 있다”며 “그 인연으로 자리를 잡았다”고 말했다.

본보는 한 전 청장이 뉴욕주립대에 체류 중이라는 사실을 듣고 소재 파악에 나서 16일(현지 시간) 어렵게 그를 대학 연구소에서 만났다. 대학 직원으로부터 알아낸 연구소 문을 두드릴 때까지도 그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뜻밖에도 한 전 청장은 3평 남짓한 연구소에서 홀로 두꺼운 원서를 읽고 있었다. 지금까지 기획출국 등의 의혹을 받던 국내 인사들은 대부분 대학 등에 ‘적만 걸어두고’ 잠적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의외였다. 기자가 들어서자 놀라는 표정이 역력했다.

기자는 국세청 출입기자 시절 한 전 청장과 알고 지낸 인연으로 30여 분간 대화를 할 수 있었다. 박 회장 세무조사와 관련해서 묻자 “헛걸음을 했다. 아무런 할 얘기가 없다”며 굳게 입을 다물었다.

최근 한 언론과의 통화에서 ‘검찰 조사도 받을 수 있다고 말하지 않았느냐’고 다그치자 “기자에게서 전화가 걸려와 ‘미국에 얼마나 머물 것이냐’고 해 3년에서 5년 정도 계획하고 있다고 했더니 ‘그럼 그동안 한국에는 안 들어올 것이냐’고 되묻더라. ‘한국 사람인데 왜 한국에 안 가느냐’고 말했더니 그걸 가지고 ‘검찰이 부르면 귀국할 수도 있다’고 쓴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검찰에서 연락한 적이 없느냐’는 질문에 “전혀 없다”며 “내가 검찰에서 조사받을 일이 뭐가 있겠느냐”고 덧붙였다.

‘한나라당 인사들과도 연락하지 않느냐’고 묻자 “거기에서 나한테 뭣 때문에 연락이 오겠느냐”고 말했다. 민주당이 제기하는 ‘기획출국설’, 박지원 민주당 의원이 주장한 ‘이상득 한나라당 의원의 태광실업 세무조사 지시설’, 박연차 회장의 세무조사 무마 로비 의혹 등에 대해 물었지만 시종일관 “아무 얘기도 할 게 없다”며 함구했다.

한 전 청장은 부인과 두 자녀는 한국에 머물고 있으며 자신은 학교 주변 방 한 칸짜리 ‘반지하’ 아파트에서 월세 950달러를 내고 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공부하고 있는 분야는 평소 관심을 가졌던 ‘복합학문’”이라며 “쉽게 말해 경제학 사회학 심리학 철학 등 여러 학문을 두루두루 공부해 다양한 현상에 대해 솔루션을 찾는 학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공부를 마치고 귀국해 책을 쓰고 강연도 하며 제2의 인생을 살고 싶다”며 “또다시 관직을 맡을 생각은 전혀 없다”고 강조했다.

뉴욕=신치영 특파원 higgle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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