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내 외국 탐정을 아시나요

  • 입력 2009년 4월 18일 16시 53분


외국의 탐정제도와 같은 민간조사원 자격을 신설하도록 하는 법안이 국회 계류 중인 가운데 국내에 들어와 있는 해외 탐정 기업에 대해서도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 국내에는 현재 크롤(Kroll), 핀커튼(Pinkerton), 힐앤어소시에이츠(H&A) 등 20여개 기업이 들어와 있다. 이들은 '비즈니스 컨설팅' '위기관리 센터' 등의 간판을 달고 국내 영업을 하고 있다.

민간조사 업계에선 탐정 법안이 지체되면서 세계적인 네트워크와 선진 기법을 가진 해외 업체에 2조원 규모의 시장이 잠식될 것이라고 전망 했다. 민간조사 관련 법안을 제출한 한나라당 이인기 의원 실도 민간조사 시장이 활성화되면 변호사 시장을 능가할 것이라는 분석을 내 놓았다.

이 가운데 크롤 사의 니콜라스 블랭크(Nicholas Blank) 한국 지사장과 만나 베일에 싸인 해외 탐정 기업에 대해 알아 봤다. 올해 초 한국에 부임한 블랭크 지사장은 이전에는 중국 지사에서 근무했다. 그는 인터뷰에 응하면서도 일체의 사진 촬영이나 녹음은 거부했다.

1972년 줄스 크롤(Jules B. Kroll)에 의해 설립된 크롤은 전 세계에 3700명의 요원을 두고 수 십 억 달러의 매출을 올리고 있는 기업으로 현재 마쉬&맥클레넌 컴퍼니스(MMC)의 자회사다. 주 업무는 기업을 위한 정보조사 및 보안, 경비와 위험관리다. 월가에선 크롤의 보고서 없이 새 사업을 하지 않을 정도로 영향력이 큰 업체이다. 워낙 유명하다 보니 크롤 자체가 동사가 되기도 했다. 월가에선 "They are krolled"라는 재밌는 표현이 있는데 '크롤 사에게 평판을 조회 당했다'라는 말로 당사자들에겐 꽤 기쁜 일로 받아들여진다고 한다. 이는 어떤 회사에서 자신을 관리자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고 그 만큼 비즈니스 영역에서 중요한 인물이 됐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이 크롤 사가 4년 전 국내에 지사를 설립하고 서울 중구 태평로에서 본격적인 업무를 하고 있다.

지난해 이인기 의원의 발의로 국회 계류 중인 법안은 ▲미아나 가출인 등 실종자 찾기 ▲소재가 불분명한 물건의 소재 파악 ▲의뢰인의 피해 확인 및 원인에 관한 사실 조사 등에 중점을 두고 있다.

반면 크롤 한국지사는 ▲횡령 등 기업 내 부정행위의 조사와 예방 ▲소위 '짝퉁'으로 불리는 위조품의 조사와 특허권의 침해 등 지적재산권 보호 활동을 하고 있다. 민간 조사 업무가 국내법상 제약이 적은 비즈니스 컨설팅 쪽으로 특화된 것이다.

블랭크 지사장은 "한국 언론은 크롤을 민간 조사업체나 탐정 회사라고 부르지만 우리는 기업 리스크 자문 회사"라며 "변호사, 경찰, 군인, 검사, 회계사, 기자 등 다양한 전문 인력이 직원으로 근무 중이다. 우리는 한국법의 테두리 안에서 일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국내 탐정 업체들이 '흥신소'라 불리며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는 것도 그가 차이를 강조하는 한 이유인 듯 했다.

하지만 크롤이 전혀 탐정 기업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다. 미국 본사에서는 쿠웨이트 정부의 의뢰를 받아 사담 후세인의 비자금을 조사하거나, 이혼한 남편이 아내와 사는 자녀를 유괴해 해외로 도망친 사건(2001-2003), 아프리카 주재 미 대사관 폭탄공격(1998), 이탈리아 은행가의 살해 사건(1991-1994) 등 다방면에 걸쳐 난제를 해결해 왔기 때문이다. 이 같은 내용은 크롤의 공식 웹 사이트에도 소개돼 있다.

한국에 진출한 지 4년 밖에 안 됐지만 블랭크 지사장은 자신들이 기업 내부 고발자의 도움을 받아 여러 부정행위를 적발했다고 한다. 그는 몇 가지 해결된 사례를 들려주기도 했다.

A사의 경우 한 회사와 유지 보수 서비스 계약을 맺었으나 실제로 서비스를 제공받지 못하고 돈만 빠져 나갔다. 알고 보니 상대 회사는 사업자 등록증만 있는 유령 회사였다. 기업 내 임원과 외부인이 짜고 돈을 몰래 횡령했던 것. 또 원자재를 일반 시장 가격의 10배나 더 주고 구매해온 B사를 조사해보니 이사의 아내가 원자재 공급 회사의 대표였다. 부정행위는 내부 고위층들만 저지르는 것이 아니었다. C사의 경우 원자재 창고 관리인과 화물차 운전사가 공모해 원자재 트럭의 무게를 재는 저울을 조작했다. 100㎏을 싣고 왔으면 150㎏을 싣고 온 것으로 조작해 50㎏어치의 돈을 빼돌린 것이다. 이 돈은 두 사람이 사이좋게 나눠 가졌다.

블랭크 지사장은 "조사 대상에는 관련자의 컴퓨터, e메일도 들어 있다. 이 경우 로펌의 조언에 따라 움직인다"고 말했다. 소규모 국내 민간 조사 업체의 도움을 빌리는 때도 있다. 그는 "주로 시간이 많이 걸리는 단순 업무를 아웃소싱 한다"고 했다. 국내 업체들이 관련법이 국회에서 통과돼 민간조사 시장이 넓어지면 하청 업체로 전락할 수 있다며 긴장하는 게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블랭크 지사장은 한국 시장을 상당히 긍정적으로 내다 봤다. 그는 "경기 침체기라고는 하나 한국 내 자본이 충분하고 한국 정부의 재정 지출도 빠르다. 또한 경기 침체기에는 기업들이 부정행위나 비정상 거래 등 이해 상충 행위, 비용 절감에 민감해질 수밖에 없다. 이런 일을 조사하는 업계의 전망은 매우 밝다"고 말했다.

블랭크 지사장은 끝으로 "정부도 사적 영역의 조사 업무를 지원해 줘야 한다. 미국의 경우 이 분야는 상당히 열려 있다. 이 같은 조사 업무의 활성화는 기업의 투명성과 신뢰성을 향상 시킬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현정 동아닷컴 기자 phoeb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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