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폭등에 헉… 졸다가 주문실수
지난해 12월 KAIST 금융전문대학원에 다니는 신창호 씨의 휴대전화가 요란하게 울렸다. 해외선물(先物) 거래를 돕고 있는 금융회사 담당자였다. “시카고 상품거래소에서 거래한 옥수수, 콩 선물 만기일이 다가왔는데 알고 있나요? 지금 매도를 안 하면 현물(現物·실제 물건)이 배달될 수도 있어요. 빨리 팔아야 합니다.”
설핏 잠이 들었던 신 씨는 시계를 봤다. 오전 2시가 넘었지만 벌떡 일어났다. 하마터면 투자수익은커녕 옥수수 자루가 태평양을 건너 날아올 판이었다. 그는 KAIST 학생투자펀드(KSIF)에서 파생상품 거래를 맡고 있었다.
○ 2주년 맞은 KSIF
KSIF는 학생들에게 금융현장 실습 기회를 주자는 취지로 서남표 총장이 아이디어를 내 2007년 출범했다. 학교 측이 10억 원의 종잣돈을 제공하면 학생들이 주식매매부터 위험관리까지 모든 자산운용을 전담하는 형태다. 시장분석을 통해 투자방향을 제시하는 투자전략팀, 가치주와 성장주에 각각 투자하는 주식운용1·2팀, 선물 등 파생상품에 투자하는 대안투자팀 등 내부 조직도 일반 자산운용사와 비슷하다. 미국 샌디에이고대에서 학생운용펀드를 만들어 성공적으로 운용한 경험이 있는 금융전문대학원 김동석 교수가 지도를 맡았다. 대학가에 아마추어 주식투자 동아리는 많지만 학생들이 학교 자금을 직접 굴리는 것은 이 펀드가 국내에서 처음이다.
17일 2기 학생들은 자신들을 믿고 돈을 맡겨준 대학 은사들과 금융계 인사들 앞에서 지난 1년간(지난해 4월 16일∼올해 2월 28일)의 운용보고서를 발표했다. 성적은 학생들치고는 괜찮은 편이었다. 220일 동안 누적수익률 ―11.10%. 비록 원금에 손실이 나긴 했지만 같은 기간 코스피(―39.55%)와 비교하면 결코 나쁘지 않은 성과다. 이날 운용보고를 지켜본 한국투자증권 유상호 사장은 “100년 만에 처음이라는 금융위기 속에서 학생들이 이 정도 성과를 낸 것은 놀라운 일”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 교과서에도 없는 금융위기, 악전고투
학생들은 지난 한 해 금융 교과서에도 나오지 않는 시장의 돌발 변수들과 맞서 좌충우돌했던 순간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시장전략팀 박시윤 씨(경영공학 석사과정)는 금융위기가 한창일 때 일주일에 한 차례 있는 운용회의가 바늘방석이었다고 말했다. 이론적인 모델에 따라 전략을 짜면 시장은 번번이 예상과 다르게 움직였기 때문이다. 그는 “투자전략을 브리핑할 때마다 시장 예측이 한발 늦는다고 핀잔을 많이 들었다”고 털어놓았다.
주식운용 2팀은 지난해 말 주가가 계속 떨어지자 공매도(주가가 하락할 것으로 예상될 때 주식을 빌려 파는 투자기법으로 주가가 예상대로 떨어지면 이익을 얻는다)를 시도해보자고 의견을 모았다. 공매도와 관련된 내용을 낱낱이 공부하고 논문까지 탐독한 뒤 매매를 시도하려는 순간 정부가 ‘시장을 교란시키는 주범’이라며 공매도를 전면 금지해 허탈감에 빠졌다.
KSIF 조교 이효섭 씨(경영공학 박사과정)는 “달러 선물에도 투자를 했는데 지난해 말 예상치 않게 원-달러 환율이 폭등했을 때가 가장 당황스러운 순간이었다”고 말했다.
○ 운용은 이론과 현실을 연결하는 기회
학생들은 비록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교과서에서 배운 모델을 현실에 적용해 나가면서 배우는 과정이 의미 있었다고 자평했다. 학생들은 이 같은 실무경험을 살려 일선 금융 현장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1기 학생 중 졸업생 4명은 자산운용사, 한국투자공사(KIC) 등에 취업했다. 졸업 후 파생상품 설계 분야에서 일하고 싶다는 박시윤 씨는 “전공은 전자공학이지만 경제학 관련 경험은 펀드를 운용하면서 쌓을 수 있었다”며 “금융 현장에 나가면 KSIF 경험이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서현 기자 baltika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