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명 ‘올해의 장애인상’ 수상
양영순 씨(55·여)는 살아오면서 딱 세 가지가 불편했다. 가난한 것, 배우지 못한 것, 몸을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것. 양 씨는 이 장애물들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맞섰다. 그는 장애인 자립을 위한 목장갑 공장을 차렸고, 전국지체장애여성협회 활동을 하며 매년 여성장애인 체육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지체장애인에게 옷 수선 기술을 가르치고 한 달에 두 번 정신지체요양시설에 가서 봉사활동을 한다.
지체장애 1급인 양 씨는 생후 9개월에 소아마비를 앓아 걷지 못한다. 날품팔이로 다섯 남매를 키운 양 씨의 홀어머니는 학교에 보내주지 않았다. 양 씨는 어려서부터 어머니로부터 “나 죽을 때 같이 죽자”는 말을 들으며 살았다. 그는 17세부터 38년간 휠체어에 앉아 옷 수선을 해왔다. 1977년 23세 때 결혼했지만 남편이 간질을 앓아 실질적인 가장 노릇을 했다. 삶은 힘겨웠지만 더 어려운 장애인들에게 옷을 사주고 쌀도 대줬다.
한평생 제주도에서 살아온 양 씨는 1982년 마음이 맞는 지체장애인 40여 명과 함께 ‘제주도지체장애인협회’를 만들었다. 장애인들이 집 밖으로 나올 기회를 만들고 싶어 장애인 야유회를 열었다. 제주도지체장애인협회는 회원이 2000명을 넘는 커다란 단체로 성장했다.
그는 1991년 한라산 등반에 나섰다. 휠체어를 탈 수 없으니 장갑을 끼고 네 발로 기어 이틀 만에 정상에 도착했다. 무릎이 다 까지고 손바닥은 부르텄다. 정상에 올라 만세를 세 번 부를 때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양 씨는 “남들이 하는 거라면 나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2002년 인도네시아 여행에서 다 부서진 휠체어에 앉아 있는 장애인을 보고 선뜻 자신의 휠체어를 내줬다. 여행 내내 남편이 업고 다녀야 했지만 마음만은 뿌듯했다.
양 씨는 20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63빌딩 국제회의장에서 열리는 제29회 장애인의 날 기념식에서 올해의 장애인상을 받는다. 양 씨는 “넉넉지 못한 형편에 남을 돕다 보니 우리 아이들을 제대로 챙겨주지 못한 게 가장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가족은 장애인상 상금의 절반을 장애인단체에 기부하는 데 적극 동의했다.
양 씨 외에 아시아 최초의 청각장애인 가톨릭 사제 박민서 씨, 시각장애인 음대 교수 이상재 씨, 사지마비 상태로 장애인 시설을 운영하는 정상용 씨, 열 손가락이 절단됐지만 7대륙 최고봉을 정복해낸 김홍빈 씨가 올해의 장애인으로 선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