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살 준법 여든까지]초중학교 9년간 ‘법’교육은 2개 단원뿐

  • 입력 2009년 4월 22일 02시 57분


법 교육은 민주시민을 길러내는 데 목표를 두고 있는 만큼 어릴 때부터 법에 대해 바른 태도를 갖도록 다양한 체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 2007년 9월 경북 울진군 부구중학교에서 학생들이 자치법정을 열어 교칙을 위반한 동료학생을 어떻게 제재할 것인지를 논의하고 있다. 사진 제공 한국법교육센터
법 교육은 민주시민을 길러내는 데 목표를 두고 있는 만큼 어릴 때부터 법에 대해 바른 태도를 갖도록 다양한 체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 2007년 9월 경북 울진군 부구중학교에서 학생들이 자치법정을 열어 교칙을 위반한 동료학생을 어떻게 제재할 것인지를 논의하고 있다. 사진 제공 한국법교육센터
■ 법교육 실태-개선방안

고교선 선택과목 지정

학습시간 절대적 부족…추상적 지식 주입에 그쳐

가치관 형성 시작되는 유치원때부터 가르쳐야

국가적 차원 지원 절실

‘나랏일을 맡아 하는 기관들.’

현행 7차 교육과정 교과서에서 법과 관련된 내용이 처음 등장하는 초등학교 6학년 사회과목의 단원 제목이다. 제목에서 보듯이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의 기능과 역할 등 헌법의 삼권분립에 대한 내용이 중심이다. 이어지는 ‘국민의 권리와 의무’ 단원 역시 헌법에 규정된 국민의 의무와 기본권에 대해 나열식으로 설명하고 있다. 과거 교과서에 비해 삽화나 토론 등의 과제가 많이 늘어났지만 워낙 추상적인 내용을 다루는 까닭에 학생들에게 법에 대한 첫인상은 ‘어렵고 지루한 것’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 그나마 교사용 해설서에는 이 단원들이 ‘정치’ 과목으로 표시돼 있다. 교사용 해설서의 분류대로라면 초등학교 과정에서는 법 교육이 존재하지 않는 셈이다.

○ 공교육에서부터 홀대받는 법 교육

법무부의 연구용역을 맡아 대학교수와 현직교사 10여 명으로 구성된 ‘법 교육 과정 태스크포스’가 21일 초중고교의 사회 과목 교과서를 분석해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정규 교과과정에서의 법 교육 홀대는 심각한 상황이다. 학습 분량 자체가 적은 것은 물론이고 그나마 단편적인 지식을 전달하는 수준에 그쳐 민주시민으로서 갖춰야 할 법에 대한 태도와 가치관을 키워주는 제대로 된 법 교육과는 거리가 멀다.

이 같은 사정은 중학교에서도 마찬가지다. 중학교에서는 2학년 사회 과목의 ‘사회생활과 법 규범’을 통해 법 교육을 다루고 있다. 법치주의의 의미와 법의 종류, 헌법에 보장된 시민의 자유와 권리를 불과 20여 쪽에 담으려다 보니 학생들에게 법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이를 체화할 여지를 주기는커녕 주입식으로 지식을 죽 늘어놓는 식이다. 그나마 교과서 맨 끝 단원에 편성돼 있어 수업이 느슨해지는 학기말에 소홀히 다뤄지는 경우가 많다.

고교 과정은 더욱 심각하다. ‘법과 사회’가 별도의 과목으로 돼 있지만, 2학년 이후에 배우는 심화 선택과목이어서 매년 전국 고교생의 4, 5%에 불과한 5만∼6만 명만이 이 과목을 배우는 실정이다.

2011년부터 적용되는 개정 7차 교육과정에서는 중학교 과정에 1개 단원, 고교 과정에 인권, 정의 등 2개 관련 주제가 추가됐다. 하지만 중학교에서는 2학년 때 배우던 법 교육 단원이 1학년 때 배우는 것으로 앞당겨짐에 따라 초등학교 6학년 후반부 과정에 헌법 부분을 배우자마자 비슷한 내용을 반복 학습하게 되는 등 여전히 문제가 있다고 지적된다.

법 교육이 이처럼 학교 안에서 홀대당하는 것은 정치, 경제, 지리, 역사 등 다양한 분야로 이뤄진 사회 과목의 일부로 취급되고 있기 때문이다. 규범이나 질서에 대한 부분은 도덕이나 윤리과목에서도 다뤄지지만 진정한 의미의 법 교육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일선 교사들은 법 교육이 올바른 가치관과 태도를 형성하는 데 목표를 두고 있는 만큼 특정 학년에서만 가르칠 것이 아니라 꾸준히 반복적으로 교육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이지혜 교사(서울 대림초교)는 “‘길을 건널 때 신호등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 하는 식으로 생활 속에서 자신이 어떤 식으로 법의 보호를 받으며, 그에 대해 어떤 태도를 지녀야 할지를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차근차근 가르쳐야 한다”고 말했다.

○ “법 교육은 일찍 시작하는 것이 중요”

법 교육이 바로 서려면 교과과정에서 충분한 비중을 확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릴 때부터 조기교육이 이뤄져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대체로 초등학교 졸업 이전에 가치관이 형성되기 때문에 교과수업 부담이 적은 유치원생과 초등학교 저학년 때 많은 시간을 법 교육에 할애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곽한영 부산대 사회교육과 교수는 “유독 한국사회에서 법원, 검찰, 경찰 같은 법적 기관에 대한 신뢰가 낮은 이유는 법에 대해 바른 의식과 태도를 배울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라며 “교육과정 전반에 걸쳐 법의식에 대해 지속적인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법 교육 활성화를 위해서는 국가 차원의 지원이 절실하다. 법 교육의 중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확산됨에 따라 지난해 3월 법 교육 지원법이 제정됐다. 하지만 예산 편성과정에서 한 푼도 배정되지 않아 ‘빛 좋은 개살구’에 그치고 있다.

전문성이 높은 법 교육의 특성상 외부 전문가의 도움도 중요하다. 교육 프로그램이나 교재 개발, 강연, 교사 연수 등은 개별 학교나 교육당국의 힘만으로 해결하기에 한계가 있다. 또 교과과정에서 비중이 낮다는 이유로 소홀히 다뤄지는 예비교사에 대한 법 교육을 강화해 전문성을 갖춘 교원을 길러낼 필요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제안한다.

전성철 기자 dawn@donga.com



■ 선진국의 법률교육은

美, 민간단체 프로그램 학생들 자발적 참여

佛, 초등학교부터 공동 생활규칙 토론 수업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법에 대한 올바른 태도와 가치관을 심어주는 일은 오늘날 세계 각국의 교육에서 큰 화두다. 세계화와 정보기술(IT)의 발달로 일상생활이 한층 복잡해짐에 따라 사회 통합과 갈등 해결을 위해 민주적인 법의식과 법적 자질을 갖도록 가르치는 시민교육의 중요성이 높아진 까닭이다.

미국은 법 교육의 중요성에 가장 일찍 눈뜬 나라다. 1960년대 반전(反戰)운동과 민권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나면서 인종차별 금지와 평등 같은 헌법적 가치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커진 때문이다.

미국의 법 교육은 전미변호사협회(ABA)나 시민교육센터(Center for Civic Education), 기본권재단(Cons-titutional Rights Foundation), 파이알파델타 공공사업센터 등 민간 비영리단체가 주도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들 단체는 교재 개발과 교사 연수, 재정 지원은 물론 실제 학교 교육에까지 폭넓게 참여하고 있다. 미 법무부 청소년사법비행예방국의 대표적 법 교육 프로그램인 ‘정의로운 청소년(Youth for Justice)’도 이들 민간단체의 유기적인 협력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이 밖에 학교와 법원, 지방 변호사회 등도 △총기, 마약 없는 안전한 학교 만들기 △자율적 사법 참여의식과 법적 문제 해결 능력 키우기 교육 등 각자의 목표와 관심에 따라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해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도록 하고 있다.

독일에서 법 교육은 민주시민을 키워내는 정치교육의 일부분이다. 국가와 체제에 대한 지나친 옹호가 군국주의로 흘렀던 불행한 과거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법 안에 담긴 민주적 가치에 대한 교육으로 눈을 돌린 것이다. 내무부 산하의 연방정치교육원은 학교 교육은 물론 대중매체나 출판물을 통한 교육, 외부 정치교육단체 지원 등을 통해 국민이 올바른 정치적 시각을 갖도록 도움을 주고 있다. 1990년대 이후에는 독일 통일과 유럽연합(EU) 출범에 따른 사회적 갈등을 극복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영국은 과거에는 사회과목에서 지리나 역사 교육에 중점을 두고 따로 법 교육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1999년 국가교육지침을 개정해 중고교 과정에 시민의식(Citizenship) 과목을 신설했다. EU 출범으로 영국의 사법과 인권, 정치와 행정에 대한 교육의 필요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프랑스도 같은 해 고교 과정에 ‘시민법률사회’ 과목을 도입해 법 교육을 강화하는 추세다. 이민자 증가 등으로 일찌감치 다문화사회로 접어든 프랑스는 초등학교 때부터 공동생활 규칙에 대한 토론수업 등을 통해 학생들이 민주시민으로서의 자질과 역량을 키울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전성철 기자 daw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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