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중국 유럽은 소득 수준과는 별개로 ‘자전거 선진국’이다. 고유가 시대의 절약, 환경, 건강 등의 구호를 내걸지 않더라도 이들 나라에서 자전거는 이미 생활필수품이 된 지 오래다. 그에 따른 제도적 기반도 비교적 잘 갖춰져 있다.
○일본
어디가나 자전거 주차장
교통분담률 14% 이르러
○ 자전거는 생필품
일본에서 자전거는 생활필수품이다. 아이를 자전거 뒤에 싣고 유치원에 데려다주거나 장을 보러 가는 젊은 엄마 모습은 흔한 광경이다. 비 오는 날 앞뒤에 한 명씩 아이를 태우고 우산을 받쳐 든 채 자전거를 모는 주부도 드물지 않다. 백화점이나 대형마트엔 으레 제법 큰 규모의 자전거 주차장이 갖춰져 있다. 주말에는 꽉 차서 인근 도로에 세워놓은 자전거도 많다.
일본은 철도 왕국이라고 불릴 정도로 철도와 전철이 잘 발달돼 있지만 역과 집, 역과 사무실을 잇는 2차 교통수단은 단연 자전거가 압도적이다. 2005년 기준으로 자전거 교통분담률은 14%로 한국(1.2%)보다 훨씬 높다. 일본자전거협회에 따르면 2007년 자전거 보급대수는 7000만 대 정도다. 인구 1.8명당 1대꼴. 연간 자동차시장 규모는 1000만 대 수준이다.
도쿄에선 일요일 낮 시내에 가면 누구나 자전거를 공짜로 탈 수 있다. 긴자(銀座)와 왕궁 사이 넓은 도로를 3km 정도 차단하고 자전거 전용도로로 운영하기 때문이다.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임대 자전거도 수백 대 준비돼 있다. 2인용 자전거, 어린이 자전거, 경주용 자전거, 바퀴가 작은 미니자전거 등 모양도 가지각색이어서 취향에 따라 바꿔가며 타볼 수 있다. 자전거를 못 타는 사람을 위한 일대일 강습도 실시한다. 모든 게 무료다.
그러나 자전거 전용도로 상황은 다소 열악한 편이다. 자전거 사고도 적지 않다. 경찰청에 따르면 자전거와 보행자의 충돌 사고는 2006년 2767건으로 매년 증가 추세다.
국토교통성은 1973년 ‘대규모 자전거도로 계획’을 발표하고 인도의 턱을 없애는 등 도로 정비사업을 꾸준히 벌여 왔다. 그러나 자전거 전용도로와 차도의 일부를 단락 지은 자전거도로, 차선 표시로 구분한 자전거 레인을 모두 합쳐도 2660km로 전국의 도로 120만 km의 0.2%에 불과하다. 정부는 자전거 전용도로 정비를 위해 지난해 전국 98개 지역을 모델지구로 선정하는 등 의욕적으로 나서고 있다. 향후 10년 동안 20개 도시에서 1만 km의 자전거 전용도로를 만들 계획이다.
○중국
○ 자전거로 넘치는 베이징 대학가
지난 주말 찾아간 중국 베이징(北京) 하이뎬(海淀) 구 칭화(淸華)대 정문. 자전거를 탄 남녀 학생이 끊임없이 몰려들어 왔다. 대학 구내 곳곳에 마련된 자전거 보관소는 수백 대의 자전거로 금세 가득 찼다. 류칭난(劉慶楠·토목엔지니어학과 4학년) 씨는 4년간 자전거로 등교했다며 집에서 30분가량 걸린다고 말했다. 대학 인근 우다오커우(五島口) 전철역 주변도 자전거를 타고 등교하거나 출퇴근하는 사람들로 혼잡했다.
중국의 대도시 거리는 수년 전까지만 해도 자전거 홍수였다. 학생은 물론 주부, 식당 점원, 공장 근로자, 심지어 대학교수들도 자전거를 탔다. 중국 어언문화대의 왕(王)모 교수는 “도시가 대부분 평평한 지형에 자리 잡고 있어 자전거를 많이 타는 것 같다”고 말했다.
도난도 잦아 ‘베이징에서 세 번은 자전거를 잃어버려야 베이징에 살고 있다’고 말할 정도다. 중국 공안부가 2007년 말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중국에서는 전동자전거 70만 대를 포함해 한 해 400만 대가량의 자전거가 도난당해 20억 위안(약 4000억 원)의 경제손실이 발생한다. 하지만 최근 들어 베이징이나 상하이(上海) 등 대도시에서는 자동차가 늘어나면서 도심 일부 거리에서 자전거 통행이 제한되는 등 ‘자전거 천국’에서 점차 벗어나는 실정이다.
그럼에도 중국은 여전히 자전거 생산과 수출 대국이다. 중국통계연감에 따르면 생산은 2004년 7906만 대로 절정에 달했다가 2007년 7475만 대로 줄었다. 수출은 1998년 1761만 대에서 2007년 5923만 대로 늘었다.
○프랑스
○ 파리의 공용자전거
드니말 씨는 “자전거를 타면 기분이 상쾌하고 건강에 좋을 뿐 아니라 경제적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지하철과 버스를 동시에 이용할 수 있는 한 달 정기권을 사면 55.1유로가 든다. 그러나 공용자전거를 이용하면 규정 시간을 초과 이용하는 것을 포함해도 1년에 29유로면 충분하다. 공용자전거는 타고 가서 아무데나 반납할 수 있고, 고장 나도 자신이 돈과 힘을 들여 고칠 필요가 없다.
프랑스인들은 도로의 주인이 자동차만이 아니라 자전거라는 인식이 확고하다. 공용자전거가 파리처럼 복잡한 시내에서 성공한 것은 이런 문화 덕분이다. 파리의 자전거 전용도로는 다른 서구 대도시에 비해 적다. 도로도 좁아 자동차와 자전거가 뒤엉켜 다니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이 자전거를 이용하는 것은 자동차가 자전거를 충분히 배려해주기 때문이다. 자전거가 느리게 간다고 경적을 울리는 자동차는 없다. 자동차가 기다렸다 알아서 피해간다. 프랑스에서 자전거는 도로로 다녀야 한다. 8세 이하의 아이들만 자전거를 인도에서 탈 수 있다.
파리 공용자전거의 성공 요인은 시가 공용자전거를 도입하고 제작 운영 수선은 ‘JC 드코’라는 민간기업이 담당함으로써 공공성과 효율성을 두루 살린 덕분이다. 이 업체는 그 대가로 파리시로부터 공공간판 1600여 곳의 독점 사용권을 받는다.
도쿄=윤종구 특파원 jkmas@donga.com
베이징=구자룡 특파원 bonhong@donga.com
파리=송평인 특파원 pisong@donga.com
▼日 자전거 등록-보험제로 도난 대비
中 베이징 등 무료대여-임대업 활기
佛 공용 자전거 반납 안하면 범칙금▼
■ 각국 자전거 지원책
웬만한 규모의 자전거 점포에서는 자전거 등록과 보험을 대행한다. 경찰 등록비(500엔)와 일정 금액의 보험료를 내면 자전거 사고 때 보상받을 뿐만 아니라 1년 안에 잃어버렸을 경우 원래 가격의 20%에, 2년 안에 분실하면 40% 값으로 같은 가격대의 자전거를 살 수 있다. 큰 역 주변에 있기 마련인 주륜장(자전거 세워두는 곳)은 주로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한다. 무료도 있지만 싸게 돈을 받는 곳도 있다.
한 예로 일본의 최대 수산물시장인 쓰키지(築地)시장의 전철역은 500대 규모의 주륜장과 바로 연결돼 있다. 관리사무소에 등록만 하면 무료로 이용할 수 있지만 등록 조건은 좀 까다롭다. 집이나 직장, 학교가 전철역에서 300m 이상 떨어져 있어야 한다.
중국의 베이징(北京) 등 대도시에는 대로를 따라 ‘보조도로’가 있다. 승용차도 다닐 수 있지만 출퇴근 시간대에 자전거가 쏟아져 나오면 ‘자전거 전용도로’로 쓰인다. 중국이 자전거 사용을 장려하는 대표적 사회 인프라다.
최근 베이징 상하이(上海) 지난(濟南) 등 대도시에서는 ‘자전거 무료대여’제도가 등장했다. 베이징 차오양(朝陽) 구 마이쯔뎬(麥子店) 지역에서는 일부 아파트 단지에서 주민에게 무료로 자전거를 대여해주고 있다. 베이징 시는 내년 말까지 베이징 전역에서 자전거 4만∼5만 대를 무료로 빌려주어 베이징 인구(지난해 호구 보유 기준 약 1229만 명) 20명 중 한 명꼴로 자전거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도록 지원할 예정이다.
지난해 올림픽을 계기로 베이징 시가 대기오염을 줄이기 위해 자전거 사용을 장려하면서 자전거 임대업도 활기를 띠고 있다. 자전거 임대업체인 베이커란투(貝科藍圖)와 자이무(甲乙木)는 시 전역에 200개와 110개의 대여망을 설치해 ‘한 시간 2위안(400원) 또는 1개월에 30위안’을 받고 자전거를 빌려주고 있다.
프랑스 파리의 공용자전거는 싼 값에 누구나 이용할 수 있지만 규칙을 어겼을 경우 적지 않은 범칙금을 내야 한다.
운영주체인 민간기업은 무인대여소에서 사용자의 아이디(ID)를 확인하고 신용카드 번호를 확보해 반납되지 않을 경우 150유로를 물릴 수 있다. 기본 이용료는 무료로 하는 대신 30분을 초과할 경우 일정액을 내도록 해 회전율을 높인 것도 공용성을 확보하는 데 기여했다.
베이징=구자룡 특파원 bonhong@donga.com
도쿄=윤종구 특파원 jkmas@donga.com
파리=송평인 특파원 pisong@donga.com
대학가 자전거 등교 행렬
年400만대 분실 사고도
자동차와 함께 차도 이용
느리게 가도 경적 안울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