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가리봉동의 추억’ 역사 속으로…

  • 입력 2009년 4월 23일 02시 58분


중국어 간체자와 한글로 된 간판이 섞여 있는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 가리봉시장의 모습. 20여 년 가까이 중국과 한국의 문화가 뒤엉켜 존재해 온 이곳도 재개발의 바람에 사라지게 됐다. 한상준 기자
중국어 간체자와 한글로 된 간판이 섞여 있는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 가리봉시장의 모습. 20여 년 가까이 중국과 한국의 문화가 뒤엉켜 존재해 온 이곳도 재개발의 바람에 사라지게 됐다. 한상준 기자
조선족 4238명 거주 ‘서울 속 작은 외국’

내년부터 재개발로 변신, “53층 빌딩에 기념관 조성 애환 깃든 풍경사진 보전”

22일 지하철 7호선 남구로역 3번 출구로 나오자 중국어 간체자(簡體字) 간판들이 속속 눈에 들어왔다. ‘외국인 핸드폰 개통’ ‘환전’ ‘양꼬치’ ‘국제전화카드’ 등의 간판이 즐비한 가리봉시장이다. 가리봉시장을 중심으로 이 인근 일대에는 중국에서 건너온 조선족이 많이 살고 있다.

이들이 가리봉동 일대에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은 1992년 한중수교가 이뤄진 뒤다. 구로공단이 번성하던 1970년대 쪽방촌이었던 이곳은 싼 방을 찾는 조선족이 하나둘씩 정착하면서 조선족 밀집지역으로 변했다. 중국동포타운신문 김용필 편집국장은 “1988년 구로공단이 사실상 사라지면서 슬럼화된 이곳을 다시 번성하게 만든 것은 바로 중국동포였다”며 “가리봉동 일대는 한국 다문화 사회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 주는 곳”이라고 말했다.

구로구에 따르면 3월 말 현재 가리봉동에 거주하는 조선족은 4238명이나 된다. 동 전체 인구가 1만5620명이니 4분의 1 이상이 조선족인 셈. 여기에 주말이면 다른 지역의 조선족까지 모여들면서 조선족 유동인구가 1만여 명에 육박한다.

하지만 서울 속의 ‘작은 외국’이었던 가리봉동은 2010년부터 전혀 다른 세상으로 변신한다. 가리봉시장 일대를 재개발하는 ‘가리봉균형발전촉진지구 개발사업’에 따라 가리봉동 125 일대 28만여 m²의 땅에는 서울디지털산업단지와 호텔 등이 들어선다.

철거를 앞둔 가리봉동 주민들은 못내 아쉬운 표정이다. 가리봉시장에서 10년째 노래방을 운영하고 있는 이남주 씨(52)는 “처음 노래방을 열었을 때만 해도 손님이 밤새 끊이지 않았지만, 최근에는 경기 침체와 재개발 소식 때문에 손님이 뜸해졌다”며 “재개발하는 것이 좋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사람들의 애환이 깃든 이곳의 흔적이 사라진다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서울중국인교회 최환규 목사는 “가리봉동 일대는 강제추방당한 중국동포들의 한이 서린 곳이고, 처음으로 한국과 중국의 문화가 접목되기 시작한 곳”이라며 “가리봉동의 이런 역사가 제대로 보존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구로구도 재개발을 할 때 가리봉동 일대의 흔적을 최대한 보존한다는 방침이다. 구는 재개발 지역에 들어설 53층짜리 랜드마크 빌딩 4층에 별도의 기념관을 조성할 계획이다. 구로구 유영환 홍보과장은 “1970년대 구로공단과 1990년대 이후 조선족 밀집지역은 모두 구로구의 흔적”이라며 “새롭게 들어서는 신도심에 과거의 흔적을 모두 담아 복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구는 우선 기념관에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의 가리봉동 일대 사진을 전시할 계획이다. 또 가리봉시장 일대의 조선족 밀집지역 풍경을 하나하나 사진에 담아 신도심 지하 연결 통로 전체를 이 사진들로 꾸밀 계획이다. 유 과장은 “연결 통로 전체를 사진으로 꾸미면 시민들이 마치 조선족 밀집지역을 지나는 듯한 기분이 들 것”이라며 “가리봉동 일대는 미래형 도시로 거듭나겠지만, 기념관뿐 아니라 재개발 사업 전체 과정을 담은 백서 안에도 과거의 모습을 남길 것”이라고 말했다.

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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