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노무현 前대통령 先서면조사 왜?

  • 입력 2009년 4월 23일 02시 58분


조사시간 단축하고 ‘전직’ 예우

수사내용에 자신감 반영

盧답변내용으로 관심 이동

홍만표 대검 중수부 수사기획관은 22일 노무현 전 대통령을 소환조사하기에 앞서 서면질의서를 보낸 이유에 대해 “노 전 대통령을 상대로 조사할 내용이 굉장히 많다. 그래서 (실제 소환 때) 조사 시간을 줄이고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를 갖추기 위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검찰은 ‘노무현 전 대통령 서면질의서’라는 제목의 A4 용지 7장짜리 문서를 먼저 문재인 전 대통령비서실장에게 e메일로 보낸 뒤 원본은 봉투에 넣어서 수사관이 직접 전달했다.

e메일로 먼저 발송된 질의서는 이날 오후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 사저를 방문한 문 전 비서실장을 통해 노 전 대통령에게 곧바로 전달됐다. 노 전 대통령 측 김경수 비서관은 “검찰에서 문 전 실장에게 ‘소환조사에 앞서 서면질의서를 먼저 보내도 되겠느냐’는 연락이 와 내부 협의를 거쳐 동의했다”며 “그러자 곧 e메일 질의서가 도착해 노 전 대통령과 문 전 실장이 내용을 봤다”고 말했다.

그럼 왜 검찰은 ‘선(先)서면조사, 후(後)소환조사’라는 방식을 택했을까. 우선 소환조사를 둘러싼 물리적인 어려움을 고려할 때 서면조사를 먼저 하는 게 적절하다는 것이다. ‘600만 달러’ 의혹을 둘러싼 관련자 조사를 노 전 대통령을 통해 매듭지으려면 하루 만에 조사를 끝내기 어렵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전직 대통령 소환조사에 하루를 넘기는 것은 적잖은 부담이 된다.

결국 검찰은 서면진술서를 통해 사실관계를 상당부분 확정한 뒤 소환조사에서 이를 보완하는 방식으로 수사의 효율성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최근 들어 정치권에서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소환 일정을 놓고 갖가지 정치적 해석이 난무하면서 검찰로서는 나름의 해법이 필요했다. 서면질의서를 보낸 순간 이후의 소환조사 일정에 대한 부담은 노 전 대통령 측이 나눠 갖게 된다. 답변이 올 때까지는 정치권도 노 전 대통령 쪽을 주목할 것이고 답변이 어떤 내용으로 오는가에 따라 검찰은 수사 일정을 다시 조율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하면 소환조사 날짜를 잡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이 되는 29일 국회의원 재선거를 둘러싼 논란도 최소화할 수 있다.

검찰이 서면질의서를 보낸 것은 노 전 대통령 수사에 어느 정도 사전준비가 마무리됐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서면조사는 통상 조사 내용을 철저히 숨기고 조사 당일 피의자에게 전혀 예상치 못했던 비장의 카드를 꺼내 보이는 검찰의 조사 관행과 다소 거리가 있다. 그런데도 검찰이 먼저 서면조사에 나선 것은 노 전 대통령이 조사 내용을 미리 알게 되고 측근들이나 변호인들과 대책을 상의한다 해도 상황이 달라지지 않을 정도로 충분한 증거 확보가 돼있다는 자신감을 내비친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전지성 기자 verso@donga.com

부산=윤희각 기자 tot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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