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발생한 동반 자살
23일 오전 11시 반경 양구군 양구읍 웅진터널 인근 46번 국도 교차로에 주차된 싼타모 승용차에서 박모 양(19·강원 춘천)과 한모 씨(22·서울) 등 남녀 4명이 쓰러져 있는 것을 산불감시원 윤모 씨(39)가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윤 씨는 "산불 감시 활동을 하던 중 한 주민에게서 남자 한 명이 길에 쓰러져 있다는 말을 듣고 가 보니 도로변 승용차 옆에 남자 1명이 의식을 잃은 채 있었고 차 안에 3명이 더 있었다"고 말했다.
경찰이 도착했을 때 차 안의 박 양은 이미 숨져 있었으며 차 밖에 쓰러져 있던 한 씨를 포함해 생존한 3명은 인근 병원으로 옮겼으나 2명은 중태다. 경찰은 "차 안에 타다 남은 연탄이 놓여있었으며 창문 틈에는 청테이프가 붙여져 있었다"고 밝혔다.
차 안에서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으나 '죽는다' '죽어야겠다'는 쪽지가 발견됨에 따라 이들이 자신의 처지를 비관해 동반자살 한 것으로 보고 정확한 경위를 조사 중이다. 경찰은 이들의 연령대와 주거지가 서로 다른 점으로 미뤄 인터넷 자살 관련 사이트에서 만나 동반자살을 모의한 것으로 추정하고 이 부분에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이에 앞서 22일 오후 홍천군 서면의 한 펜션에서도 10~20대 남녀 5명이 동반자살을 시도하려고 투숙했으나 펜션 주인의 신고로 막을 수 있었다.
●인터넷 동반 자살 확산
동반자살이 발생한 각 지역의 경찰은 이들이 자살 관련 인터넷 사이트, 카페, 블로그 등을 통해 만난 뒤 자살을 모의한 것으로 보고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인터넷 게시판들이 폐쇄와 개설을 반복하는 구조여서 이를 찾는데 애를 먹고 있다.
경찰은 17일 인제에서 숨진 지모 씨(47·강원 속초)의 수첩에서 15일 횡성에서 숨진 김모 씨(26·경기 성남)의 휴대전화 번호가 적혀 있는 것을 확인함에 따라 이 일행들이 동일한 사이트에서 자살을 모의한 것으로 심증을 굳히고 조사 중이다.
인제경찰서는 인제에서 숨진 3명이 한 포털 사이트의 커뮤니티 게시판에서 만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이들은 실명이 아닌 ID를 사용해 '어떻게 죽으면 안 아프나', '동반 자살자를 구한다'는 등의 글을 올렸고 쪽지를 통해 대화를 주고 받았다. 이들은 '어떤 수단으로 하면 쉽게 죽을 수 있나', '연탄가스가 자살하기에 무난하다'는 등 자살 방법과 장소에 관한 정보를 나누며 친분을 다진 후 서로 만나자는 약속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 관계자는 "이 사이트는 현재 폐쇄되고 없다"고 밝혔다.
정선경찰서는 "정선 사망자 가운데 신모 씨(35·서울)는 자살하기 며칠 전 모 대학병원에 시신기증을 약속하는 등 자살을 위해 치밀하게 준비를 한 점이 발견됐다"며 "업체로부터 전화 통화 내역과 이메일 송수신 내역 자료가 도착하는 대로 본격적으로 이들이 동반 자살하게 된 경위를 분석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 씨는 정확한 사인 규명을 위해 부검을 한 탓에 시신 기증의 뜻은 이루지 못했다.
●강원 주민 뿔났다
강원도에서 동반자살 사건이 연속으로 터지자 주민들은 강원도의 이미지가 나빠질 것을 크게 우려하고 있다. 특히 숙박업소 등 지역 상인들은 "5월초 황금연휴를 앞두고 있어 모처럼의 관광 특수를 누리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반응이다. 콘도, 펜션 등 관광지 주요 숙박업소들이 대부분 예약 완료된 상황에서 예약 취소 사태가 우려되기 때문이다.
택시기사 이성환 씨(41·춘천)는 "산 좋고 물 좋은 강원도가 동반자살 최적지로 인식되는 것 같아 불쾌하다"며 동반자살 예방을 위해 관계당국이 적극 나서줄 것을 주문했다.
강원도관광협회 임성규 부장은 "불황기에 이런 불미스런 사건이 계속 터져 안타깝다"며 "아직 숙박업소들에 대한 예약 취소 사태 등은 없다"고 말했다.
춘천=최창순 기자 cschoi@donga.com
이인모 기자 im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