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조사 의혹… 감사원 진상 파악해 내달 발표
과거사委 “왜곡 없어… 유족이 말 바꾸는 것”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가 지난해 ‘국군에 의한 양민 학살 사건’으로 규정한 ‘1950∼51년 전북 고창군 민간인 사망 사건’의 사실 관계가 일부 왜곡됐거나 조사 자체가 미흡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한나라당 신지호 의원은 23일 “과거사위가 ‘국군에 의한 사망자’로 발표한 105명 중 연락처가 파악된 57명의 유족 등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17명(29%)은 빨치산에 의해 죽었거나 사망 원인이 분명치 않았는데도 과거사위가 이들까지 국군에 의한 사망자 명단에 포함시켰다”고 말했다.》
과거사위는 지난해 4월 “국군 11사단의 토벌작전에 의해 고창군 심원면과 해리면에서 민간인 273명이 사망했고 이 중 105명의 신원을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신 의원이 공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17명의 사망자 중 11명의 유족은 신 의원 측에 가해자가 ‘빨치산’이나 ‘인민군’이라고 진술했다. 또 나머지 6명의 유족은 “가해자가 불분명하다”고 증언했다는 것. 17명을 제외한 나머지 40명의 유족들은 과거사위 발표대로 “국군에 의해 사망했다”고 밝혔다.
사망자 하종영 씨의 조카는 신 의원 측에 “자동차를 한번 타보자는 요구를 거절당한 빨치산이 앙갚음으로 백부(伯父)를 총으로 쏴 죽였다고 과거사위에 증언했다”고 말했다. 사망자 허연 씨의 동생도 “형이 빨치산의 총에 죽었다고 진술했는데 왜 결과가 바뀌어 있는지 모르겠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희생자 박태환 씨의 아들은 “부친은 인민군에 의해 경찰지서로 끌려가 노역에 동원됐다가 총에 맞아 돌아가셨다”고 말했다. 그런가 하면 사망자 오덕순 씨의 딸 이모 씨는 “피란 도중 어머니가 총에 맞아 돌아가셨는데 누가 쏜 것인지는 모른다”고 했다. 이 외에도 배기찬 씨의 사망과 관련해 당시 이 마을에서 중학교에 다녔던 김모 씨(74)는 “의용군에 갔다 왔다고 빨치산이 총으로 쏴 죽였다”고 증언했다. 이와 관련해 신 의원은 “과거사위 조사관들이 유족들을 면사무소 등에 단체로 모아 놓고 단답식으로 묻고 대답을 들어 부실하게 조사가 진행됐다”며 “특히 노약자 등 거동이 불편한 유족들은 직접 면담을 하지 않았으며 유가족협회장 등의 간접 진술을 부각시켜 결과에 반영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조사 자체가 사건 발생 이후 57년이나 지난 시점에 이뤄진 것으로 후손들의 진술 외에는 이렇다 할 증거 자료가 없어 애초부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또 일부 연로한 유족의 경우 당초 과거사위 측에 ‘국군이 죽였다’는 쪽으로 진술했다가 신 의원과의 면담에서 번복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6·25 남침피해 유족회’ 측은 과거사위의 조사 결과 발표 직후 “국군을 양민 학살자로 만들어 명예를 훼손했다”며 안병욱 과거사위 위원장을 고발해 현재 소송이 진행 중이다. 또 감사원은 유족회 측의 국민감사청구에 따라 이달 초 예비감사를 실시해 결과를 다음 달 초 발표할 예정이다.
이에 대해 과거사위 측은 “문제가 된 17명은 모두 위원회 조사에서 ‘국군에 의한 사망’으로 확인됐지만 개인 신상에 대한 내용이라 세부 조사 내용은 공개할 수 없다”고 밝혔다. 당시 조사에 참여한 한 조사관은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조사 내용을 조작하거나 왜곡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며 “유족들이 과거사위 발표 내용과 다른 말을 했다면 진술을 번복했다는 것인데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박정훈 기자 sunshade@donga.com
::고창 사건 조사 결과는
‘고창 사건’은 6·25전쟁이 진행 중이던 1950∼51년 전북 고창군 일대에서 민간인이 집단으로 사망한 사건을 말한다.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가 지난해 이 사건에 대한 조사를 시작하기 전까지만 해도 고창 사건은 입소문으로만 전해졌다. 과거사위는 지난해 4월 조사 결과 발표에서 “당시 국군 11사단의 빨치산 토벌 과정에서 전북 고창군 일대에서 민간인 273명이 집단 학살됐다”며 “빨치산과의 교전 직후 빨치산 및 빨치산 협력자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부대이동 경로에 있던 주민과 피란민을 무차별 총격 사살했다”며 국가의 공식 사과와 위령사업 지원을 권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