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절뒤 곧바로 경찰에 전화
경찰, 숙박업소에 긴급 문자
33분만에 일행 붙잡아
22일 오후 7시 25분경 강원 홍천경찰서 상황실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 홍천군 서면의 모 펜션 업주 홍모 씨(50·여)가 “수상한 젊은 남녀 5명이 투숙하려고 해 거절했다”고 신고한 것.
경찰은 동반자살 모의자로 의심하고 즉시 관내 이장·반장 및 숙박업소 1000여 곳에 ‘회색 렌터카, 남성 3명, 여성 2명 투숙자 신고 바람’이라는 문자를 보냈다. 지난해 범인 은닉 및 사건 예방을 위해 구축한 일괄 문자 전송 시스템 덕이었다.
잠시 후 7시 38분경 서면의 다른 펜션 주인 이모 씨(55)에게서 “남녀 5명이 투숙했다”는 신고가 들어왔다. 형사 7명이 펜션에 도착한 것은 그로부터 20분 뒤. 이모 씨(25·울산)와 유모 양(16·충남 공주) 등 일행은 야외에서 고기를 구워 먹으며 소주와 양주 등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러나 경찰이 심증만으로 이들을 동반자살 모의자로 몰아붙일 수는 없었다. 경찰은 “요즘 동반자살 사건이 잇따르고 있어 문제다. 협조해 달라”고 양해를 구했다. 그러자 일행은 “무슨 소리냐? 우리는 놀러 왔을 뿐”이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사는 곳이 어디냐고 물어보자 5명의 대답이 모두 달랐다. 울산, 충남 공주, 경기 부천, 시흥, 충북 청주. 집단자살 시도 심증이 확증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경찰은 렌터카 트렁크를 열어달라고 요청했고 그 안에서 연탄 6장과 번개탄 15장, 화덕, 청테이프 등을 발견했다. 최근 강원도에서 발생한 연쇄 동반자살에 사용된 물건들이었다. 경찰은 일행을 다그쳤고 결국 “같이 죽으러 왔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펜션 주인의 신고와 경찰의 문자 전송 시스템, 신속한 대응으로 5명의 생명을 건진 셈이다.
경찰은 이들을 경찰서로 연행해 조사한 뒤 23일 가족에게 인계했다. 이들은 인터넷 자살 관련 사이트에서 만나 쪽지를 통해 자살을 모의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동반자살 예방을 위해 숙박업주들에게 신고요령을 알려준 것이 귀중한 생명을 건진 계기가 됐다”며 예방 활동을 더욱 강화할 계획이다. 경찰은 △투숙객의 나이 차가 많이 나고 △서로 대화가 적어 어색해 보이며 △렌터카를 이용하고 △짐 내용물이 안 보이게 포장한 경우에는 잘 판단해 신고해 줄 것을 당부하고 있다.
이인모 기자 im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