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공부 잘하는 오빠 때문에 스트레스를 엄청나게 받았어요. 그 반대작용으로 한때 공부가 아닌 다른 곳에 열정을 쏟았죠.”
울산여자고등학교 2학년 박수빈 양은 노래실력이 빼어나고 피아노, 바이올린, 플루트도 잘 다룰 만큼 다재다능하다. 초중학생 시절 친구들이 공부할 때 박 양은 발레와 아이돌 그룹의 유행안무를 연습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성적은 가까스로 중위권을 유지했다. 고교에 진학한 뒤 그는 마음을 고쳐먹고 가방 2개를 메고 다니며 ‘독하게’ 공부했다고 한다. 반 배치고사에서 전교 100등을 차지한 뒤 1학년 중간고사 성적은 전체 20등, 2학기에는 전교 4등까지 올랐다.》
○ 춤, 노래, 악기연주 실력 갖춘 팔방미인
“오빠가 영재교육원에 다녔을 때 개구리 해부세트를 선물로 받았다며 집에 가져왔어요. 호기심에 직접 개구리 해부를 하면서 의사란 직업에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그때부터 의학 드라마는 빠짐없이 챙겨봤죠.”
의사가 꿈인 박 양의 입에서는 한 살 위인 오빠 얘기가 자주 나왔다. 울산과학고 1기 졸업생인 오빠는 박 양에겐 한때 애증(?)의 대상이었지만 지금은 존경의 대상이기 때문이란다.
박 양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활달한 성격과 뛰어난 노래실력으로 친구들 사이에 인기가 높았다. 반장도 도맡아 했다. 과학책과 과학 잡지를 즐겨 읽었던 오빠 옆에서 함께 책을 읽은 덕분에 ‘과학독후감대회’ ‘과학상상글짓기대회’ 같은 각종 글쓰기 대회의 상을 휩쓸었다.
하지만 박 양은 어려서부터 ‘오빠처럼 공부를 잘 해야지’라는 얘기를 주위에서 수도 없이 들어야 했다. 그런 모습을 안쓰럽게 여긴 부모님은 “하고 싶은 일을 맘껏 해보라”고 권유했다. 3학년 때 우연히 발레리나의 아름다움에 심취해 발레를 배우기 시작했다. 주인공을 맡아 공연을 하기도 했고 여러 대회에서 상도 탔다. 그 사이 피아노, 바이올린, 플루트도 익혔다.
중학교에 들어가서는 발레 대신 방송안무 동호회 활동을 시작했다. 춤을 추는 동안은 그 누구보다 행복했다. 학교수업을 제외한 대부분의 시간에 춤을 연습했을 만큼 춤에 미쳐 지냈다. ‘소질이 있으니 무용과에 진학할 생각 없느냐’는 제안을 받기도 했다.
시험 기간에는 그나마 공부한 덕분에 반 40명 중 15등 안팎을 간신히 유지했다. 고교 입학 소집일 이후 예전과 달리 박 양은 배치고사 준비를 시작했다. 첫 시험 성적이 고교 생활을 좌우하기도 한다는 얘기를 듣고 많은 학생이 열심히 준비하는 모습에 자극을 받았던 것이다. 평소 무뚝뚝하고 말 없던 오빠의 격려 한마디는 큰 힘이 됐다.
“공부하는 모습에, 기대보다 좋은 성적에 부모님이 두 번 놀라셨대요. 전체 550명 중 100등이었으니까요. 그때 ‘나도 공부하니까 되는구나’ 하는 자신감을 갖게 되었죠.”
○ 오빠는 내 공부방식의 모범답안
본격적으로 공부하기로 결심한 박 양에게 오빠의 공부습관은 모범답안이나 다름없었다. 박 양은 효율적인 시간관리를 위해 ‘스터디 플래너’를 적극 활용했다. 오빠와 달리 책상에 30분도 앉아 있지 못하는 태도를 바로잡는 일이 가장 시급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아침자습 시간이면 그는 그날 해야 할 일을 플래너에 빼곡히 기록했다. 가능한 한 주요 과목은 하루도 거르지 않도록 계획을 세웠다. ‘하루에 끝내기는 너무 많은 양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한편으론 ‘내가 과연 어느 정도까지 해낼 수 있을까’를 궁금해하며 목표량을 계속 늘려갔다.
박 양은 늘 가방 2개 안에 전 과목 교과서와 참고자료를 잔뜩 넣고 다녔다. 매일 고루 공부해야 하는 데다 학교와 집에서 해야 할 분량도 달랐기 때문이었다. 계획한 일을 마친 뒤 수첩에서 해당 항목을 하나씩 지울 때마다 성취감을 느꼈다. 계획한 양을 끝내지 못하면 잠자는 시간을 줄이거나 주말시간을 전부 반납해 공부했다.
내신 준비는 2주 전부터 시작했다. 수학에는 다소 취약한 편이라 공부시간을 많이 할애했다. 틀린 문제가 있으면 일주일 후 다시 푼 뒤 또 틀리면 오답노트에 기록했다.
“시험기간이 다가오면 질문하러 다니느라 바빴어요. 특히 수학선생님 주변은 학생들로 북적거려 줄을 서야 할 정도였죠. 그 다음부터는 아예 수학시험 준비를 남들보다 일찍 시작했어요.”
박 양은 과학을 좋아하고 수업시간에 개념을 이해하는 속도가 빨라 친구들의 부러움을 샀다. 하지만 응용력이 떨어지는 편이라 서너 권의 문제집을 반복해서 풀었다. 암기과목은 눈으로 여러 번 읽고, 잘 안 외워지는 부분은 수첩에 관련 내용을 기록하며 외웠다.
○ 성적 향상은 현재진행형
시험 몇 주 전부터 점심은 어머니가 싸준 도시락으로 해결했다. 급식 대신 도시락을 먹으면 줄을 서서 기다릴 필요가 없어 40분가량 공부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친구들은 “마치 수험생을 보는 것 같다”며 박 양이 대화에 동참하지 않을 때마다 아쉬워했다.
시험 당일 한 과목을 마칠 때마다 반 친구들은 정답을 확인하느라 분주했지만 박 양은 아예 눈과 귀를 닫았다. 점수가 안 좋을 경우 불안한 마음이 커져 다음 시험까지 망칠 것이 뻔했다. 두어 달 넘게 ‘독하다’는 소리까지 들어가며 공부한 끝에 중간고사에서 수학을 제외한 대부분 과목에서 만점을 받았다. 이런 생활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춤이나 노래가 아닌, 공부를 하면서도 재미를 느낀 강렬한 경험 덕분이었다. 전교 4% 이내 학생에게 주는 상을 받았고, 2학기 중간고사에서는 전교 4등을 해서 ‘진보상’을 받았다.
내신뿐 아니라 한두 달 간격으로 치러지는 모의고사 준비에도 신경을 썼다. 언어영역은 EBS 인터넷 강의인 ‘고전문학’ ‘현대문학’을 하루 단위로 번갈아가며 들었다. 또 외국어영역은 매일 세 개의 지문을 초시계를 이용해 제한된 시간 내에 푸는 연습을 했다. 미국 드라마 ‘CSI’ ‘프렌즈’도 틈틈이 시청했다. 같은 내용을 여러 번 보고 대본을 뽑아서 영어문장과 단어를 익혀갔다. 얼마 전 치른 모의고사에서는 전 영역에서 1, 2등급을 받았다.
박은정 기자 ej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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