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선택 ‘정보가뭄’ 속타는 中3

  • 입력 2009년 4월 29일 02시 59분


올해 하반기 서울에서 처음으로 시행되는 고교선택제의 영향으로 학부모들의 고교 정보에 대한 수요가 더 커졌다. 11일 동아일보와 하늘교육이 공동 주최한 특목고 입시설명회에서 입시정보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학부모들. 사진 제공 하늘교육
올해 하반기 서울에서 처음으로 시행되는 고교선택제의 영향으로 학부모들의 고교 정보에 대한 수요가 더 커졌다. 11일 동아일보와 하늘교육이 공동 주최한 특목고 입시설명회에서 입시정보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학부모들. 사진 제공 하늘교육
자녀 성향에 맞춘 학교진학 이렇게

《“달랑 종이 한 장 주고 쓰라니까 너무 답답했죠.” 중학교 3학년 아들을 둔 대학교수 김승태 씨(가명·47)는 지난주 진학 희망 고교를 적어 내라는 가정통신문을 받았다. 서울시교육청이 올해 처음 도입하는 학교선택제를 앞두고 중학교 3학년 학생을 둔 학부모들에게 가정통신문을 보낸 것이다. 타블로이드판 신문 크기인 통신문에는 학교명, 공사립 여부, 단성(單性) 공학 구분, 학급 수, 학교 위치, 학교 특색, 종교재단 여부 등이 적혀 있었다. 하지만 학교 위치가 동까지만 표시돼 있고 학교 특색에 적힌 ‘3무(無) 생활지도’, ‘SAICOL’ 같은 표현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는지 알기가 어려웠다.》

김씨는 중학교 3학년 담임교사인 아내는 다를 줄 알았다. 하지만 아내도 “시교육청에서 ‘고등학교 선택 길라잡이’를 받았지만 각 학교 홈페이지에 나온 설명을 요약해 놓은 수준”이라며 “통학 방법이 소개된 것 정도만 참고할 만하다”고 말할 뿐이었다. 김 씨는 지난해 문을 연 학교 정보 공개 웹사이트 ‘학교알리미’를 찾아봤지만 가장 관심이 가는 대학 진학률은 4년제와 전문대 구분만 있었다. 김 씨는 아들이 다니는 학원을 통해 인근 고교의 명문대 진학률 정보를 들었지만 믿을 만한지 의심스러웠다. 각 학교 홈페이지에 나온 내용은 너무 자기 자랑 같아 불편했다. 또 자율형사립고가 지정된다는데 어떤 학교가 물망에 오르고 있는지 확인할 길도 없었다.

시교육청 관계자는 “이번에는 모의배정이라 준비가 소홀한 측면이 있었다”며 “실제 고교에 지원할 때는 ‘길라잡이’를 모든 학생과 학부모에게 배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미 길라잡이 내용을 전해들은 김 씨는 시큰둥했다. 김 씨는 “결국 가장 믿을 만한 건 또 ‘입소문’이 아닌지 의심스럽다. 사실 학교별로 별 차이가 없는데 억지 선택만 강요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며 한숨을 쉬었다.

○ “고교 선택, 입소문 걸러내 정보 추려야”

입시전문가들은 고교 선택 과정에서 진학률이 우수한 강남권 고교 몇 곳, 목동 지역 신흥 명문고에 학생이 몰릴 것으로 전망한다. ‘숨은 진주’를 찾으려면 현재로서는 학생과 학부모가 직접 정보를 찾는 수밖에 없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고교 대부분이 학생 유치 경쟁을 뜨겁게 벌이고 있다는 점이다.

학교 정보 수집은 관심 학교 몇 곳을 골라 해당 학교에 직접 문의하는 데서 시작하는 편이 좋다. 최근에는 홍보부서를 만들어 운영하는 학교도 많다. 이 부서를 통하면 원하는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관심 가는 학교에서 중학생 학부모를 대상으로 여는 입학설명회도 참석하면 도움이 된다. 학교 건물에 붙어 있는 진학 현황, 우수 학습 프로그램 소개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학교 알리미’도 무시해서는 안 된다. 우수 학교는 정보 공개를 꺼릴 이유가 없다. 단 주의해야 할 것이 있다. 일선 학교는 대학 진학률을 최초 합격자 기준으로 공개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우등생 한 명이 여러 명문대에 합격하면 중복 집계되는 것이다. 학교에서 얻은 자료를 입시설명회나 인근 학원에서 얻은 자료와 대조해 볼 필요가 있다. 또 비슷한 지역 학교로 자녀를 진학시키려는 학부모끼리 정보를 공유하는 작업도 필요하다. 해당 고교에 다니는 학생과 학부모의 의견도 최대한 많이 들어봐야 한다.

무턱대고 명문고에 진학시키는 것은 조심할 필요가 있다. 시교육청 관계자는 “고교 생활에서는 ‘시간이 금’인 만큼 체력이 약한 자녀가 먼 거리를 통학하는 것은 역효과를 낼 수도 있다”며 “3지망에서도 1, 2지망 학교를 반영한다는 사실을 감안해 가장 가고 싶은 학교를 1단계로 쓰는 게 배정 확률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1, 2지망에는 같은 학교를 쓸 수 없다. 3지망에는 희망 학교를 쓰지 않지만 1, 2지망 학교나 종교, 통학거리 등을 반영해 학생을 배정한다.

○ 공부 잘하면 무조건 특목고?

최근 몇 년간 특목고에 가지 않으면 명문대에 진학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학부모들 사이에 널리 퍼졌다. 이에 대해 임성호 하늘교육 기획이사는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등 소위 SKY로 가는 디딤돌은 특목고의 대표주자격인 외국어고 중 몇 개교에만 해당하는 이야기”라며 “서울 강남 유명 일반계고 진학률도 나머지 외고와 큰 차이가 없고 경기도에도 최초 합격자 기준으로 SKY 진학률이 10∼20% 수준인 일반계고가 늘어나는 추세”라고 말했다.

특목고는 우수 학생이 모이는 만큼 경쟁이 치열하다. 자녀가 이런 환경에 잘 적응할 수 있는 성격인지도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한다. 외고에 적응하지 못해 일반계고로 전학하는 학생도 매년 상당수에 이른다. 외고에서 일반계고로 전학한 한 학생은 “자기 성격이 ‘용의 꼬리가 되는 것’을 참아내지 못한다면 외고는 절대 비추(‘추천하지 않는다’는 뜻의 신조어)”라고 말했다.

또 외고는 재학생 60∼70%가 여학생이다. 남학생은 내신평가에서 불이익을 볼 수도 있다. 교과 내신이 우수하고 특히 수학에 강점을 보이는 남학생은 외고보다 자립형사립고가 유리할 수 있다. 또 혼자 공부하는 습관을 갖추고 고교에서 내신 5∼10% 선을 유지할 자신이 있다면 일반계고가 유리할 수 있다. 일반계고에서 교사들의 관심을 받고 공부하는 편이 오히려 자신감으로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숙사 생활 적응력도 문제가 될 수 있다.

진영성 비상에듀 평가이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한다. 진 이사는 “2012학년도부터 각 대학이 ‘학생 선발의 자율화’를 더욱 거세게 주장하게 돼 내신보다 본고사와 비교과 영역, 수능 점수가 더 중요해진다. 특목고 학생이 명문대 진학에 유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전개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하지만 진 이사 역시 “자립형사립고처럼 자율형사립고 역시 자리 잡는 데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이므로 자율형사립고 지원은 신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 “확실한 꿈 있다면 직업 교육 선택도…”

내년부터 신입생을 모집하는 마이스터고는 산업 현장에 바로 투입할 수 있는 고급 인력을 길러내는 것이 목표다. 올해 21개 학교가 마이스터고로 전환하며 전국 어디서든 지원할 수 있다. 마이스터고 학생은 학비가 전액 면제되고 또 졸업 후 최대 4년까지 입영을 연기할 수 있다. 입대 후에 특기병으로 근무할 수 있어 경력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전문계고의 특목고’인 특성화고 역시 높은 취업률을 무기로 신입생 영입에 나섰다. 서울여상은 해마다 졸업생 60%가 진학 대신 취업을 선택한다. 올해 이 학교 졸업생 평균 연봉은 2000만 원 선, 금융권에서 연봉 3000만 원을 받는 졸업생도 있다. 또 특성화고는 해외대학 진학 실적도 우수해 내신 커트라인도 오르는 추세다. 황호규 선린인터넷고 교장은 “지난해 미국 상위 10위권 대학에 6명이 진학했다”며 “우리 학교에 들어오려면 중학교 때 내신이 15% 안에 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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