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유행병 6단계’ 故 이종욱 박사가 만들었다

  • 입력 2009년 4월 29일 03시 02분


2004년 10월 전 세계적으로 조류인플루엔자(AI)에 감염된 사망자가 속출했다. 치사율이 최고 30%를 넘는다는 보고도 나왔다. 인류는 인플루엔자 대유행(팬데믹) 공포에 사로잡혔다. 이때 나선 인물이 있었다. 바로 지금은 고인이 된 이종욱 당시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사진)이다.

이 총장은 AI를 비롯한 팬데믹에 대비하기 위해 전 세계가 공동으로 노력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WHO 사무총장 자격으로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 등 당시 세계 각국의 지도자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면서 “팬데믹으로 인한 사회적 경제적 파멸을 막기 위해 대비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비상대책지휘본부(shock room)를 만들어 수시로 상황을 체크했고, 전 세계 전문가들과 화상회의를 가졌다. 이 총장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팬데믹에 준비해야 하며 어쩌면 이미 늦었는지도 모른다”고 말하고 다녔다. 2005년 5월,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현재의 ‘WHO 대유행 단계’라는 로드맵이다. WHO는 인체감염 위험에 따라 6단계로 구분한 뒤 단계별로 대처할 것을 권했다. 한국도 이에 따르고 있다. 전병율 질병관리본부 전염병대응센터장은 “이 단계별 대응전략이 나온 직접적 계기는 2004년의 AI였으며 이 총장이 세계적 확산을 막기 위해 고민을 많이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2003년 1월 그가 WHO 사무총장에 당선될 즈음에는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사스)이 확산되고 있었다. 그때도 그가 직접 현장을 방문하며 지휘한 바 있다. 실제 이 총장은 ‘백신의 황제’라는 별명을 얻을 만큼 평생 바이러스와 싸워 왔다. WHO 사무총장이 되기 전, 본부 예방백신사업국장 시절에는 소아마비 바이러스(폴리오바이러스)를 잡는 데 주력했다. 그의 노력으로 소아마비 유병률은 세계 인구 1만 명당 1명 이하로 떨어졌다.

이 총장은 2005년 5월 22일 뇌중풍(뇌졸중)으로 사망했다. 그러나 세계는 팬데믹을 막기 위한 그의 노력을 지금 다시 기리고 있다.

김현지 기자 nuk@donga.com

남윤서 기자 bar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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