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신 아버지가 양수복 씨 맞습니까?”
“그렇습네다. 사진으로만 봤던 양만식 오빠가 맞습네까?”
28일 오후 2시 서울 양천경찰서 5층 강당. 이들은 서로를 끌어안고 한동안 눈물을 흘렸다. 지난해 9월 탈북한 양모 씨(60·여)가 이름만 알고 있던 6촌 오빠 양만식 씨(74)와 처음 만난 것이다. 한 번도 만난 적은 없지만 이들은 첫눈에 같은 핏줄임을 확인했다. 오빠를 끌어안은 동생 양 씨의 머리엔 세상을 떠난 아버지의 한 맺힌 삶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아버지는 1940년경 스무 살도 안 된 어린 나이에 일본으로 강제 징용됐고 그곳에서 일본인 여성을 만나 결혼했다. 아버지는 늘 고향인 충남 공주군 사곡면 해월리를 그리워했다. 일본에서의 생활이 넉넉하지 않았지만 아버지는 고향 친척들에게 편지와 함께 학용품 등을 소포로 보냈다. 하지만 1960년 1월 아버지는 북한에 가면 잘 먹고 잘살 수 있다는 총련의 선전에 현혹돼 가족과 함께 북송선을 탔다.
북한에서의 생활은 생각과 달랐고 아버지는 후회하기 시작했다. 한을 풀지 못한 아버지는 1983년 8월, “고향을 찾아가 꼭 친척을 만나보라”는 유언을 남기고 62세로 세상을 떠났다.
딸 양 씨는 아버지의 유언을 지키고 싶었다. 결국 북에서 결혼한 남편 등 가족과 함께 지난해 9월 한국행을 택했다. 중국, 미얀마, 태국 등을 거쳐 3개월간의 험난한 여정 끝에 서울에 도착했다.
양 씨 가족은 3월 말 서울 양천구 신정2동의 한 아파트에 정착했다. 양 씨는 곧바로 양천경찰서 최순자 경위(46)를 만나 “제발 6촌 오빠 좀 찾아 달라”고 부탁했다. 28일 만남은 그렇게 해서 이뤄졌다. 초로의 여동생은 공주에서 올라온 오빠 앞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말했다.
“정말 꿈같은 일이 이뤄졌습네다. 최 경위에게 고맙지요. 근데 아버지 생전에 이런 만남이 있었더라면….”
황형준 기자 constant2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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