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등장한 시위… 현장 구호, 타당성 있나

  • 입력 2009년 5월 5일 02시 56분


시위대 “의료법 바꾸면 병원만 떼돈” 복지부 “당연지정제 폐지없다”

《‘용산 참사’ 100일(4월 29일)과 근로자의 날(1일),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시위 1주년(2일)이 겹치면서 좌파성향의 단체들이 주도하는 시위가 서울 시내에서 잇따라 열리고 있다. 돌조각이 날아다니고 도로 무단점거 등 시위양상도 점차 과격해지고 있다. 2일에는 불법 시위대에 떠밀려 서울시의 대표축제인 하이서울페스티벌 개막식이 무산됐다. 최근 열린 시위에서 시민단체들은 경제위기로 벼랑 끝에 몰린 서민과 중산층을 감성적으로 자극하는 구호와 주장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정부 관계자와 경제 전문가 등은 이들 주장 가운데 상당수는 사실을 왜곡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난해 ‘미국산 쇠고기는 미친 소’라는 선동적인 구호로 재미를 본 세력들이 다시 한 번 국민을 기만하고 있다는 것이다. 동아일보는 시위현장에서 넘쳐나는 시위대의 구호와 주장은 어떤 것이고, 과연 타당한 근거가 있는지 살펴봤다.》

“4대강 정비 나랏빚 60조↑”…국토부 “4년간 총비용 14조”

“세금 인하로 부자들만 재미”…재정부 “중산-서민층 더 혜택”

진실 왜곡해 재미 본 세력…다시 한번 대국민 ‘기만’

○ 4대강 정비사업으로 늘어나는 국가 빚이 60조 원?

최근 시위에서 ‘운하백지화국민운동’ 등 일부 단체는 “정부의 4대강 정비사업으로 나랏빚 60조 원이 늘어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국토해양부는 4대강 사업에 투입되는 총비용은 2012년까지 13조9000억 원 정도라고 했다. 정부 관계자는 “올해 추가경정예산 28조4000억 원이 투입되는 등 경기부양을 위한 국가채무가 60조 원 정도 늘어나는 것을 두고 일부 시민단체는 늘어나는 국가 채무 60조 원이 전부 4대강 때문인 것처럼 몰고 있다”고 말했다.

시민단체는 또 ‘4대강 정비 사업=사실상의 대운하 사업’이라는 등식을 만들어 내고 있다. 하지만 정부 관계자와 관련 분야 전문가들은 대운하 사업과 4대강 정비사업은 다르다고 설명했다. 심명필 국토해양부 4대강살리기추진본부장은 “4대강 살리기 사업에는 운하에 반드시 필요한 갑문시설이 설치되지 않으며 운하에 필요한 화물터미널도 없다”고 말했다.

○ 세금 인하로 부자만 재미본다?

‘촛불 1주년 집회’를 주도하고 있는 민생민주국민회의 등은 “이명박 정부가 99% 서민의 주머니를 털어 1% 특권층에 몰아준다” “특권층의 세수 감소분을 99% 서민의 세금으로 메운다”는 등의 구호를 외치고 있다. 부자들만을 위해 경제정책을 편다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정부는 소득세, 법인세, 재산세 등의 세율을 낮춰 향후 5년간 21조3000억 원에 달하는 세금을 깎아주기로 했다. 물론 세율이 낮아지면 매출이 큰 기업, 소득이 많은 개인의 세금부담이 더 많이 줄어든다. 원래 이들이 더 많은 세금을 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의 세금 인하 목표가 개인과 기업의 소비, 투자를 활성화해 경제성장률을 높이고 고용을 촉진하는 것인 만큼 저소득층은 일자리를 얻어 결과적으로 세금감면 혜택을 볼 것이라는 게 정부 설명이다. 기획재정부 당국자는 “세금 감면 효과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이후 감세된 58%가 중산, 서민층에 돌아가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 북한 인공위성을 정부가 미사일로 날조?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 등 일부 단체는 이명박 정부가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전면 참여 계획으로 개성공단 사업의 위기를 불렀다고 주장했으나 두 문제는 별개의 사안이다. PSI에는 이미 북한의 오랜 우방인 러시아 등 전 세계 90여 개국이 참여한 상태다. 북한이 개성공단의 통행을 차단하면서 PSI를 주된 이유로 내세웠지만 이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 이상에 따른 주민 동요를 막기 위한 ‘내부 단속용’인 측면이 강하다.

시위대는 또 북한이 지난달 5일 발사한 ‘인공위성 광명성 2호’를 남한 정부가 미사일로 날조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북한이 주장하는 인공위성은 미사일과 기술적인 측면에서 큰 차이가 없다. 대체로 인공위성 발사체라고 주장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무기화, 즉 미사일을 만들려는 시도라는 게 대부분 전문가들의 견해다. 시위대는 또 현 정부가 2000년 6·15공동선언과 2007년 10·4정상선언을 전면 부정했으며 이는 북한 체제를 부정하고 북한을 무너뜨리려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두 선언을 전면 부정한 적이 없다. 다만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일부 조항에서 재정적 능력과 국민적 합의 측면에서 현실에 맞지 않는 과도한 약속을 했다고 지적한 적은 있다. 현재는 양측이 합의사항의 이행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대화를 하자고 제안한 상태다.

○ 의료기관 민영화로 이제 엄청난 치료비를 내야 한다?

시위대는 5대 투쟁 의제 중 하나로 ‘의료법 개악 저지’를 설정했다. 시위대는 “정부가 당연지정제를 폐지하면 서민들은 감기만 걸려도 엄청난 돈이 든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보건복지가족부는 “당연지정제를 폐지하는 내용의 의료법 개정은 절대 없다”고 몇 차례나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최근 영리병원 허용 논의와 관련해서도 전재희 복지부 장관은 당연지정제의 유지와 공공의료의 확충 등이 제도적으로 보장돼야 영리병원 허용을 받아들일 수 있다고 밝혔다.



황진영 기자 buddy@donga.com

신석호 기자 kyle@donga.com

길진균 기자 l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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