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추문에 계파 싸움까지…‘참교육’ 사라진 위기의 성년식

  • 입력 2009년 5월 5일 02시 56분


■ 창립 20돌 맞는 전교조

정진화 前위원장 제명이후 참실련-교찾사 내분 격화

교사들도 갈수록 외면…조합원 4년새 23% 급감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이 28일 창립 20돌을 맞는다. 그러나 즐겁고 성대한 성년식을 치르기는 힘들 듯하다. 잇단 성추문 사건으로 도덕성에 치명타를 입으면서 내부 갈등까지 고조돼 창립 이후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4일 드러난 경기 안양 전교조 교사 3명의 교생 성추행 사건도 그렇지만 지난달 정진화 전 위원장(49)이 제명처분을 받은 것도 성폭력 사건의 여파 때문이었다. 지난해 12월 민주노총 간부가 전교조 여성 조합원을 성폭행하려 한 사건이 발생했는데도 정 전 위원장은 피해 조합원 구제보다 조직보호를 먼저 내세웠다.



○ 전교조 내부 대립 격화

제명 처분을 받은 정 전 위원장은 1989년 창립 때부터 전교조에 몸담아 왔던 핵심 인물. 이번 제명 처분은 형식적으로는 민주노총 성폭력 사건 진상규명특별위원회로부터 권고받은 내용을 하급 단체인 전교조가 이행하는 형태다. 민주노총 특위는 3월 정 전 위원장에 대해 “조직의 최고 책임자로서 피해자 구제보다 정치적 파장과 조직의 위기를 먼저 내세움으로써 피해자의 고통을 가중시킨 행위가 인정된다”며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권고했다.

전교조는 상급단체인 민주노총의 권고를 받아들여 자체적으로 성폭력 징계위원회를 꾸렸고, 7명의 징계위원 중 4명이 제명 조치에 찬성했다. 얼핏 보면 상식적이고 합법적인 절차에 따라 이뤄진 것 같지만, 그 이면엔 전교조 내 친(親)정진화계인 ‘참실련(참교육 실천 연대)’과 반대세력인 ‘교찾사(교육노동운동의 전망을 찾는 사람들)’의 이전투구가 숨어있다. 정 전 위원장 제명에 찬성한 4명은 모두 교찾사 출신이었다.

정 전 위원장은 제명 결정에 반발해 현재 재심을 청구한 상태이며 참실련도 “제명은 과도한 처분”이라며 교찾사를 겨냥하고 있다. 조합 내 성폭력 사건이 없진 않았지만 지금까지 단 한 번도 2차 가해자가 제명된 적은 없었다는 주장도 펴고 있다. 그러나 교찾사는 “민주노총 지도부가 총사퇴한 만큼 전교조 지도부도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참실련은 전국 단위의 회의를 통해 비상협의체를 구성한 것으로 전해졌다. 교찾사 역시 원영만 장혜옥 등 역대 교찾사 출신 전교조 위원장을 중심으로 현 지도부 총사퇴를 관철하기 위한 팀을 꾸렸다. 전교조의 양대 계파가 이처럼 정 전 위원장 제명을 둘러싸고 ‘특별 팀’까지 꾸려 마주 달리다 보니 전교조가 분열의 수순을 밟는 것 아니냐는 관측까지 나오고 있다.

○ 강경파 위기의식 반영

현재 전교조는 권력 다툼에서 밀린 교찾사가 더 강경한 투쟁을 요구하면서 지도부를 압박하는 양상이다. 정진화 전 위원장과 정진후 현 위원장은 모두 참실련 소속으로 처음으로 한 계파가 연속으로 위원장 선거에서 승리했다. 상대적으로 교찾사는 위기의식을 느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전교조 조합원인 이모 교사는 “사상 처음으로 위원장 출신 인사가 제명되는 등 내부 권력 다툼이 과거보다 더 극한 양상으로 전개되는 것은 이런 내부 상황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전교조는 지난해부터 계파가 다른 전교조 본부와 서울지부가 여러 차례 의견 대립을 보여 왔다. 지난해 8월 전교조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대의원대회에서 ‘10월 학업성취도평가를 반대하지만 체험학습 등으로 거부하지는 않는다’고 결정했음에도 불구하고 강경파인 서울지부는 체험학습을 강행해 교사 7명이 해임됐다. 교원평가에 대해서도 본부는 전향적으로 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서울지부는 반대를 고수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민주노총 간부 성폭행 미수 사건이 발생했고, 책임론을 내세운 교찾사는 정 전 위원장 제명을 주도하고 더 나아가 현 집행부의 도덕성에 타격을 입히려 하면서 갈등이 극에 달하고 있다는 것이다.

○ 조합원 7만 명 이하로 추락

내홍이 그치지 않으면서 전교조 조합원 수는 갈수록 줄고 있다. 2003년 9만 명을 넘어서 10만 조합원을 내다봤던 전교조는 올해 3월 현재 사상 처음으로 7만 명 밑으로 떨어졌다. 강경 투쟁을 주도해온 서울지부의 조합원은 가장 큰 폭으로 감소해 처음으로 1만 명 선이 무너졌다.

일선 학교 현장에서는 전교조의 과거 위세가 점차 사라지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서울 Y고교 이모 교장은 “과거 전교조 교사들은 스스로 자부심을 갖고 활동했지만 요즘은 학부모와 동료 교사들의 눈치를 많이 본다”며 “도덕성에 타격을 입고서도 계파 싸움에 몰두하는 한 전교조는 옛 기세를 회복하기 힘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기용 기자 k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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