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을 생각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건 누구에게도 우울증에 걸려 죽게 생겼다는 말을 못하는 겁니다. 현직 부장판사가 혹독한 자살 충동을 겪었고, 또 그걸 이겨낸 경험담을 털어놨다는 게 큰 힘이 되네요."
K 씨는 이 판사처럼 가정과 직장문제로 극도의 우울증을 앓고 있다고 했다. 그는 "정신병에 대한 편견 때문에 지인들에게 내색을 할 수 없고, 휴직을 하고 싶어도 형편이 어려워 그마저 어려운 상황"이라며 "가족을 떠올리며 일어서야 한다고 주문을 외워보지만 자살의 유혹을 뿌리치기가 힘들다"고 말했다.
K 씨는 "자살 관련 상담원들과 얘기 해봐도 틀에 박힌 조언뿐이었다"며 기자에게 이 판사와 통화를 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최근 자살카페에 가입했다가 탈퇴했던 임모 씨(29) 씨도 기자에게 보낸 e메일에서 "이 판사의 사연의 듣고 자살이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는데 큰 위로를 받았다"고 했다. 3년 째 우울증을 치료를 받았던 임 씨는 최근 취업에도 연달아 낙방하면서 자살을 결심했다. 이달 초 극약을 먹고 동반자살을 하기 위해 충남 아산시의 한 모텔에 들어갔다가 객실 문 앞에서 발길을 돌렸다고 했다.
임 씨는 "자살을 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은 혼자 죽을 용기가 없어서 온 사람들이 많은데 마음 뒤숭숭한 사람들끼리 암울한 얘기만 나누다보니 살아보겠다는 마음보다는 자살할 궁리만 계속 느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방송인 손숙 씨도 이날 용기를 보탰다. 손 씨는 30대 주부시절 남편의 사업실패로 빚더미에 앉게 되자 자살의 유혹에 시달렸다. 손 씨는 "저녁마다 아파트 베란다에서 '딱 떨어지면 지긋지긋한 고통이 끝날 텐데'라고 생각하며 몇 번을 뛰어내릴까 했지만 '더 이상 바닥은 없겠지' 하는 생각으로 한 템포씩 늦추다 여기까지 왔다"고 했다. 그리곤 "살면서 휘어져도 되는데 부러져버리면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며 "휘어지면 그 반동으로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것을 자살을 경험했던 사람들이 널리 알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광영기자 ne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