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부길 前비서관 체포직전
美 출국도 도피성 의혹
檢 “韓, 수사협조 의향 밝혀”
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과 한상률 전 국세청장(사진)은 2005년 말 15주 동안 서울과학종합대학원 4T CEO과정을 같이 다녔다. 천 회장과 한 전 청장이 이때 교분을 쌓았을 수 있다. 천 회장과 한 전 청장, 임채진 검찰총장은 지난해 1월 이 대학원 원우회가 주는 ‘자랑스러운 원우상’을 받기도 했다. 게다가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의 사돈인 김정복 전 국가보훈처장은 한 전 청장의 국세청 선배다. 박 회장과 의형제 사이인 천 회장과 사돈인 김 전 처장이 모두 한 전 청장과 인연이 있는 셈이다. 한 전 청장은 지난해 7월 30일부터 11월 말까지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이 벌인 태광실업에 대한 특별세무조사를 주도했다.
○ 모든 로비는 한상률로 통한다?
6일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에 대한 압수수색을 하기 전에 홍만표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수사기획관은 미국에 체류 중인 한 전 청장에게 전화를 걸어 현재 검찰 조사에 대한 의향 등을 물었다. 홍 기획관은 7일 “한 전 청장에 대해선 필요한 부분이 있으면 확인할 수 있도록 접촉하고 있다”면서 “한 전 청장은 검찰이 필요하면 수사에 협조하겠다는 취지로 얘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검찰은 한 전 청장의 소환조사가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다.
박 회장은 지난해 7월 국세청 세무조사가 시작되자마자 천 회장과 김 전 처장 등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리고 천 회장과 김 전 처장 등이 주축이 돼 ‘박 회장 구명 대책회의’를 열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지난해 8월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형 노건평 씨를 통해 추부길 전 대통령홍보기획비서관(구속기소)에게도 청탁을 했다. 박 회장은 추 전 비서관에게 로비자금으로 2억 원을 건넸고, 추 전 비서관은 이명박 대통령의 형인 한나라당 이상득 의원과 정두언 의원에게 부탁을 했으나 거절당했다.
태광실업에 대한 세무조사의 주도권은 한 전 청장이 쥐고 있었다는 게 정설이다. 조홍희 당시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장의 보고뿐만 아니라 4국 3과장이 조 국장을 제쳐놓고 한 전 청장에게 직보하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한 전 청장은 세무조사 보고서를 들고 이 대통령을 직접 찾아가 독대했다는 얘기도 있다.
따라서 검찰은 절박한 상황에 몰려 있던 박 회장이 천 회장, 김 전 처장, 이상득 정두언 의원, 또 다른 유력인사 등 여러 사람을 거쳐 로비했더라도 결국은 한 전 청장에게 청탁이 들어갔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로비의 종착점은 한 전 청장으로 귀결된다는 것.
○ 추 전 비서관 체포 직전 출국도 의혹
올 3월 초 추 전 비서관이 검찰에 체포되기 직전 한 전 청장이 미국으로 출국한 데 대해서도 의혹은 가라앉지 않는다. 한 전 청장은 공부를 하기 위해 떠난 것이며 도피성 출국은 아니라고 밝혔지만 세무조사의 모든 과정을 알고 있는 한 전 청장이 자신의 ‘그림 로비’ 의혹을 수사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는 대신 현 정권 실세들의 세무조사 무마 로비 부분은 입을 다물기로 하고 출국한 것 아니냐는 추측이 나온다.
올해 초 한 전 청장은 국세청 차장 재직 때 전군표 당시 국세청장에게 인사 청탁 명목으로 최욱경 화백의 추상화 ‘학동마을’을 선물했다는 의혹에 휩싸였다. 이 의원 등 현 여권 실세들에게 골프 접대를 했다는 의혹이 잇달아 터지자 1월 16일 자진사퇴했으며 2개월 만인 3월 15일 미국으로 출국했다. 지난달 미국 뉴욕에서 동아일보 기자와 만난 한 전 청장은 “(태광실업에 대한 세무조사와 관련해) 검찰 등의 조사를 받을 일도 없고 할 얘기가 아무것도 없다”며 “3년에서 5년 정도 공부한 뒤 귀국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최우열 기자 dnsp@donga.com
전성철 기자 daw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