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가 성명까지 발표하며 반발… 결국 없던일로
‘불도저도 어쩔 수 없었던 잘못된 노사관행.’
정부가 최근 잘못된 노사관행을 개선하기 위해 사실상 전면전을 선포한 가운데 ‘불도저’로 불리는 이명박 대통령조차 서울시장 재임 시절 노조와의 기(氣) 싸움에서 진 사실이 알려져 화제를 낳고 있다.
이 대통령은 시장 재임 시절인 2005년 그해 가을 체육대회를 서울 잠실보조경기장에서 11월 5일에 열기로 했다. 한 달 전 개통한 청계천 복원 사업과 국정감사 등으로 고생한 직원들과 함께 즐기면서 고마운 마음을 전하려 했던 것. 시는 이 체육대회가 이 시장의 임기 내 마지막 체육대회이기도 해 연예인 초청 등 각종 프로그램을 준비하는 데 상당한 공을 들였다.
문제는 엉뚱한 데서 불거졌다. 11월 5일이 대부분의 직원이 쉬는 날인 토요일이었기 때문. 공무원 체육대회는 단체협약을 통해 관행적으로 평일에 열려 왔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직원 홈페이지에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일부 과에서는 자체적으로 설문조사를 벌여 ‘80% 이상이 반대한다’는 결과를 올렸다. 반대 여론이 거세지자 당시 서울시직장협의회(현 서울시공무원노동조합)는 ‘공휴일 직원 체육대회를 철회하라’는 성명까지 발표했다.
이 시장도 처음에는 격앙했다고 한다. 서울시 고위관계자는 “이 시장이 당시 ‘평일에 하루를 놀면서 체육대회를 하면 민원인 불편과 업무는 어떻게 하느냐’고 매우 답답해했다”고 전했다. 시와 직장협의회는 수차례 면담했지만 절충점을 찾지 못했으며, 결국 이 체육대회는 취소됐다. 휴일 체육대회에 대한 시 공무원들의 반발이 전혀 수그러들지 않은 데다 이 시장도 “평일 체육대회는 상식에 어긋난다”며 시 직원들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울시는 체육대회는 무산됐어도 관례적으로 체육대회 때 부서별로 지급하던 일정액의 격려금은 예년처럼 지급했다. 이 돈은 통상 체육대회가 끝난 뒤 부서별로 하는 뒤풀이 비용으로 사용된다.
현재 서울시 체육대회는 국실별 자체행사를 갖는 방식으로 개선됐다. 지난달 마지막 주에 가진 올해 체육대회는 대부분의 부서가 평일 업무시간이 끝난 뒤 부서별로 청계천 걷기나 영화·공연 감상 등을 하는 방식으로 치렀다. 서울시 고위관계자는 “상식적으로는 말이 안 되는 관행도 오랜 기간 별 생각 없이 해오다 보니 당시에는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였다”며 “하지만 바뀐 뒤 되돌아보면 웃음이 나올 정도로 어처구니없었던 일”이라고 말했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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