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교과서 뒤집어읽기]‘융통성’도 필요치 않을까

  • 입력 2009년 5월 11일 02시 57분


“거울이 흐려져도 깨끗한 바탕은 그대로… 때 기다려 다시 닦으면 맑아지는 법”

지식인의 사전에 ‘융통성’도 필요치 않을까

○ 들어가기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들 어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얽혀 백년만년 누리세

[고등학교 문학, 이방원 ‘하여가’]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塵土)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고등학교 문학, 정몽주 ‘단심가’]』

‘단심가’는 고려 말 충신 정몽주가 훗날 조선 태종이 된 이방원의 ‘하여가’에 대한 답으로 남겼다고 전해진다. 이성계를 중심으로 고려 왕조를 멸하고 조선 건국을 꾀하던 이방원이 자신을 회유하려 하자 이를 뿌리치고 고려 왕조에 대한 자신의 변할 수 없는 충심(忠心)을 보이기 위해 썼다는 것이다.

정몽주는 이 글을 쓰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개성 선죽교에서 격살(擊殺)당했다. 이 사건으로 인해 ‘단심가’는 충신불사이군(忠臣不事二君·충성스러운 신하는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다) 정신을 담은 대표적인 노래로 자리매김했다. 그것만이 아니다. 정몽주의 죽음은 정의롭지 못한 것에 타협하지 않고 순수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는 용기 있는 지식인의 표상으로 그려져 왔다.

○ 문제제기: 지식인은 타협적이면 안 되나

이미 기울 대로 기운 고려 왕조의 마지막 기둥을 부여잡고 죽음을 택한 정몽주가 사람들에게 지식인의 표상으로 남은 이유는 뭘까. 이 같은 역사의 아이러니에 대한 해답은 아마도 사람들의 머릿속에 있는 ‘지식인’의 이미지에서 구해야 할 것 같다. 사람들은 지식인에게 말뜻 그대로 ‘많이 아는 것’ 이상의 그 무엇, 즉 ‘어둠 속의 촛불’, ‘고요 속의 목탁’과 같이 시류(時流)에 휩쓸리지 않고 소신과 순수를 지키는 용기를 기대한다. 타협이나 융통성, 실용 등은 어울리지 않는다.

그런데 타협적이고, 융통성 있고, 실용을 추구하는 사람은 참된 지식인이라 할 수 없는 것일까.

○ 뒤집어보기

『“거울이란 얼굴을 비추어 보는 물건이든지, 아니면 군자가 거울을 보고 그 맑은 것을 취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지금 거사의 거울은 안개가 낀 것처럼 흐리고 때가 붙어 있습니다. 그럼에도 당신은 항상 그 거울에 비춰보고 있으니 그것은 무슨 뜻입니까?”

거사는 이렇게 대답했다.

“얼굴이 잘생기고 예쁜 사람은 맑고 아른아른한 거울을 좋아하겠지만, 얼굴이 못생겨서 추한 사람은 오히려 맑은 거울을 싫어할 것입니다. 그러나 잘생긴 사람은 적고 못생긴 사람은 많기 때문에, 맑은 거울 속에 비친 추한 얼굴을 보기 싫어할 것인즉, 흐려진 그대로 두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그래서 차라리 깨쳐 버릴 바에야 먼지에 흐려진 그대로 두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먼지로 흐리게 된 것은 겉뿐이지 거울의 맑은 바탕은 속에 그냥 남아 있는 것입니다. 잘생기고 예쁜 사람을 만난 뒤에 닦고 갈아도 늦지 않습니다. 아! 옛날에 거울을 보는 사람들은 그 맑은 것을 취하기 위함이었지만, 내가 거울을 보는 것은 오히려 흐린 것을 취하는 것인데, 그대는 어찌 이를 이상스럽게 생각합니까?”하니, 나그네는 아무 대답이 없었다.

[고등학교 문학, 이규보 ‘경설’]』

‘나그네’는 맑지 않은 거울은 존재할 이유가 없다고 한다. 스스로 맑아서 세상이 얼마나 혼탁한지, 거울을 들여다보는 이가 얼마나 추한지 보여주지 못한다면 거울로서 존재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거사’의 생각은 다르다. 먼지가 묻어 흐려져 있더라도 거울의 맑은 바탕은 그대로이며, 깨져 버리는 것보다는 흐린 채로 있는 게 낫다는 것이다. 그는 또 ‘잘생기고 예쁜 사람(좋은 시대나 환경)’을 만난 뒤에 다시 ‘맑은 거울’이 되더라도 늦지 않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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