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고전여행]‘소크라테스의 변론’

  • 입력 2009년 5월 11일 02시 57분


◇ 소크라테스의 변론/플라톤/서광사

기원전 399년, 아테네의 한 법정에서는 70세 노인이 500명의 배심원을 앞에 두고 법정에서 외롭게 자신의 변론을 진행하고 있었다. 젊은 기소인의 연설 3시간과 피고인 노인의 연설 3시간, 총 6시간의 재판 끝에 그는 유죄를 언도받고 사형이 확정됐다. 2500여 년을 관통하면서 존경받았던 위대한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겪은 어느 하루의 일이다.

‘철학’ 하면 떠오르는 대표자인 그가 왜 당대에는 그런 고소를 당하고 사형까지 받는 지경에 이르렀을까. 소크라테스는 저서를 단 한 권도 쓰지 않았는데, 다행히도 그의 제자 플라톤이 그 변론의 현장을 기록으로 남겼다. 우리가 3시간에 걸친 소크라테스의 장중한 변론을 생방송으로 직접 보게 된 것은 바로 이 책 덕분이다.

‘소크라테스의 변론’에 따르면 소크라테스의 기소 사유는 크게 두 가지다. ‘국가가 믿는 신들을 믿지 않는다’는 것과 ‘젊은이들을 타락시킨다’는 것이다. 그런데 고대 그리스는 올림푸스 신을 포함하여 수백의 신들을 믿는 사회다. 오늘날의 특정 종교 근본주의자들이 세운 국가와는 다르다. 또 소크라테스는 델피 신전의 아폴로 신으로부터 아테네에서 가장 현명한 사람이라는 신탁까지 들은 사람이다. 그는 변론에서 ‘신이 준 임무를 강하게 의식하며 살았노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뿐만 아니라 소크라테스는 특정 이념을 설파하면서 지지자를 모아 세를 과시하는 선동가가 아니었다. 그는 동네를 돌아다니며 유명하고 힘을 가진 정치가, 시인, 기술자들을 찾아 그들의 지식과 신념에 대해 묻고 대화하기를 즐긴 사람이다. 그의 옷은 남루하고 집은 가난했으며 돈을 벌거나 권력을 잡는 데 관심을 두기보다는 늘 아고라를 배회하는 것에 하루를 다 쓰는 그런 사람이었다.

억지스러운 기소 사유에도 안타까운 결정으로 끝났던 그 재판의 진짜 이유는 바로 소크라테스에게 박힌 ‘미운 털’ 때문이다. 정의롭지 못한 정치가에게 정의로움에 대해 묻고, 지식을 곡해하면서 팔아먹는 지식인들에게 진리가 무어냐고 묻는 일은 위험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어쩌면 그가 젊은이들의 인기를 끌었던 것은 당연한 결과였으리라.

소크라테스는 스스로를 ‘말에 붙어 있는 등에(피를 빠는 곤충)’에 비유한다. 건강하고 혈통은 좋으나 굼뜬 말과 같은 아테네에 붙어 끊임없이 그들을 일깨우고 나무라기를 멈추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자신을 몰아붙인 ‘진짜’ 죄목을 오히려 사명감이라 맞받아치면서 그는 스스로 배심원들의 심기를 건드린다. 1차 판결 280대 220으로 유죄, 2차 판결 360대 240으로 사형 확정. 마치 일제 강점기의 독립투사처럼 무죄를 믿으나 죽음으로 신념을 지키는 자의 당당한 모습이다.

이 책은 상대방과 탁구하듯 질문과 대화로 생각을 나누던 대화편에서의 모습과는 달리 소크라테스 혼자 긴 호흡으로 자신의 주장을 펼쳐 나간다. 자신을 법정에 세운 진짜 원고(당대의 실력자들)와 표면적 원고(젊은 기소자)를 나누어 각각을 세밀하게 논박한 후 스스로의 신념과 원칙을 하나씩 펼쳐 그의 사상 전체 얼개를 보여준다. 치밀한 논변술의 교본이자 소크라테스 철학의 요약본이라 해도 손색이 없다.

그가 죽음을 예상하면서도 굽히지 않았던 사상의 요체는 무엇일까? 바로 ‘캐묻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는 언명이다. 명성이나 재물보다 인간의 훌륭한 덕을 취하는 것이 현명한 자의 자세이며, 그것은 바로 끊임없이 음미하고 반성하는 삶에서 가능하기 때문이다.

머나먼 후대의 철학자 키르케고르는 이런 말을 남겼다. “돈 5달란트를 잃었다고 심각해지는 이들도 정작 자기를 잃어버린 데 대해서는 조금도 걱정하지 않는다.” 부와 권력을 얻지 못했다고 심각해지기보다는 나의 삶을 잃어버리는 데 더 큰 걱정이 필요하다. 자신의 훌륭한 덕을 지키기 위해 죽음을 택함으로써 영원한 사람이 된 소크라테스처럼.

권희정 상명대부속여고 철학·논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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