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은 곧 외국어라는 간단한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8일 서울프라자호텔에서 만난 박철 한국외국어대 총장과 진리(金莉) 중국 베이징외국어대 대외협력 부총장의 메시지는 간명했다. 한중 양국의 외국어대를 대표하는 두 사람은 마치 입을 맞춘 듯이 “지구촌 시대에는 외국어 실력을 바탕으로 다양한 문화를 이해하는 전문가만 살아남을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언어를 가르치는 우리가 더 큰 사명감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베이징외국어대는 외국어 교육에서 중국 내 최고 권위를 지닌 대학으로 하오핑(학平) 총장이 중국 교육부 부부장(차관)을 겸직해 진 부총장이 총장 직무대행을 하고 있다. 진 부총장은 “한국외국어대 개교 55주년을 맞아 학교 간 교류를 확대하기 위해 올해 안에 공자학원(孔子學院)을 한국외국어대에 설립하겠다”고 밝혔다. 공자학원은 중국 정부가 중국 문화, 역사, 정치, 경제에 대한 이해를 넓히기 위해 세계 각국에 설립하는 교육기관. 현재 전 세계 81개국에서 324곳을 운영하며, 중국 내 각 대학이 설립 및 운영에 참여한다. 베이징외국어대는 그중 13곳의 공자학원을 운영한다.
진 부총장은 “한국에 반중(反中) 정서가 생기고 중국에 혐한론(嫌韓論)이 퍼지는 것은 상대 문화에 대한 이해 부족이 빚어낸 현상”이라며 “다양한 문화를 평등한 관점에서 파악하는 국제 감각은 지구촌 시대를 살아가는 글로벌 인재들에게 필수 덕목”이라고 강조했다. 박 총장은 “중국 정부가 공자학원을 세계 곳곳에 세우는 것에 ‘문화침략주의’라는 비판이 없지 않은 것으로 안다”며 “그러나 두 학교는 오랜 교류를 통해 문화적 충돌을 피할 상호 이해력을 갖추고 있다고 판단해 공자학원 설립을 추진하게 됐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문화 교류를 강조하는 이유에 대해 “외국어 실력은 지구촌 시대의 기초 실력일 뿐 전부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직접 체험을 통해 현지 사정을 이해하지 못하면 외국어대 교육이 단지 ‘통·번역가 기르기’에 그친다는 사실을 깨닫고 교육 특성화에 나섰다는 것이다. 두 사람은 “궁극적으로 국제 감각을 지닌 전문인을 길러내는 게 교육 목표”라고 말했다.
한국외국어대는 ‘7+1 제도’를 통해 전체 8학기 중 한 학기를 해외에서 공부하도록 권장하고 있다. 박 총장은 “지난해까지 학생 1000여 명에게 장학금을 지급했고 올해는 입학 성적 상위 20%로 지원 대상을 늘렸다”며 “해외 공관에서 6개월 동안 외교관 여권을 가지고 인턴십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외교 인턴제’도 마련했고 KOTRA와도 같은 프로그램을 도입하기로 합의했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다양한 외국어 교육에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는 것에도 뜻을 같이했다. 박 총장은 “프랑스 석학 기 소르망은 ‘한국은 교수 90%가 미국에서 오고, 유학생 80%가 중국에서 온다. 한국의 국제화는 더욱 국제화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우리가 깊이 새겨야 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진 부총장도 “지구촌 시대에 각 언어에 대한 수요는 늘어나는데 가르칠 사람이 없어 문제”라고 지적했다. 한국외국어대는 올해 우크라이나어과, 몽골어과를 새로 만들었고 터키어과에 아제르바이잔어도 추가했다. 한국외국어대는 세계 대학 중 세 번째로 많은 총 45개 언어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베이징외국어대에는 43개 언어의 교육과정이 개설돼 있다. 한국어과는 1994년에 개설됐다.
박 총장은 “지구촌 시대에는 외국어가 곧 무기다. 여러 언어를 무기로 가지고 있을수록 좋은 것 아니냐”며 “외국어 실력과 함께 전공 분야의 전문성을 갖추는 것도 필수”라고 강조했다. 한국외국어대는 ‘2개 외국어 졸업 인증제’를 도입해 전공과 상관없이 2개 외국어 공인시험 성적 기준을 넘지 못하면 졸업을 시키지 않는다. 박 총장은 “2007년 입학생부터 입학 때 선택한 전공 이외에 전공 하나를 더 선택하도록 하는 이중 전공제를 의무화했다”며 “스페인어과로 입학한 학생이 경제학도 전공하도록 하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진 부총장은 “베이징외국어대도 자기 전공 언어 이외에 한 언어를 부전공으로 선택해야 한다”며 “법학원(로스쿨), 상학원(MBA), 국제관계학원, 신문방송학과 등을 만들어 외국어 실력을 무기로 전공을 살릴 길을 열어주고 있다”고 말했다.
박 총장은 “차별화된 언어 교육과 세계 각국의 법 제도, 국제통상과 지역학 연구는 외국어대만의 권리이자 장기”라며 “‘외국어대를 만나면 세계가 보인다’는 말을 모두가 공감하도록 글로벌 인재를 기르는 데 두 학교가 더욱 앞장서자”고 제안했다. 한국외국어대는 전체 동문 10만여 명 중 1만5000여 명이 해외에서 활약하고 있다.
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 박철 한국외국어대 총장
△1972년 한국외국어대 스페인어과 졸업 △1982년 한국외국어대 스페인어과 문학박사 △1985년 스페인 마드리드국립대 문학박사 △1985년 한국외국어대 스페인어과 교수 △2003년 한국스페인어문학회장 △2005년 한국외국어교육학회 회장 △2006년 한국외국어대 8대 총장
○ 진리 베이징외국어대 부총장
△1982년 산둥대 영문학과 졸업 △1986년 베이징외국어대 영문학 석사 △1993년 텍사스크리스천대 영문학 박사 △1995년 베이징외국어대 영문학과 교수 △2000년 예일대 교환교수 △2005년 베이징외국어대 부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