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설에 맡겨지는 어린이 2005년이후 작년 첫 증가
미아도 전년보다 4배 늘어
입양-공동가정 턱없이 부족…가족해체 정신적 상처 우려
지훈이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창 밖으로 흰색 자동차가 지나가면 “아빠 차다”라며 고개를 내밀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아이는 체념하는 방법을 빨리 배운다. 지금 지훈이가 ‘아빠’라고 부르는 사람은 보육원 원장이다.
경기 악화로 신(新)빈곤층이 늘어나며 지훈이처럼 시설에 맡겨지는 아이도 함께 늘고 있다. 동아일보가 보건복지가족부의 요보호아동 현황 자료를 분석한 결과 1997년 이후 12년 동안 국가적 경제위기 때마다 더 많은 아이가 버려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요보호아동은 부모가 없거나 경제적 어려움으로 보호자가 보호를 할 수 없는 아이다. 자료에 따르면 1998년 외환위기, 2001년 카드대란, 2008년 금융위기 때 부모의 손을 떠난 아동이 급격히 늘었다.
1998년에는 전년도에 비해 2000여 명이 늘어나 보호를 필요로 하는 아동이 1만800명이나 발생했다. 이후 수치는 지속적으로 줄어 9000여 명까지 줄었으나 2001년 카드대란 때 다시 1만586명으로 급증했다. 이후 계속 줄어들다 7년 만인 지난해 다시 상승하기 시작했다. 특히 지난해에는 2007년과 비교해 아이들이 버려진 이유로 경제위기가 두드러졌다. 2007년에 비해 미혼모 자녀는 70여 명 줄었고, 가출 아동은 40여 명 줄었지만 부모의 빈곤과 실직 등으로 맡겨진 아이는 500여 명이나 많아졌다. 서울 중구의 B아동양육시설 교사는 “예전엔 ‘고아원’이라고 불렀지만 지금 시설에 있는 아이들의 70∼80%는 부모가 있다”며 “지난해부터 경제적 능력을 잃은 부모들이 데려오는 아이가 많아졌다”고 말했다.
예년에 비해 2008년에는 미아가 급증한 것도 눈에 띈다. 자료에 따르면 2008년 발생한 미아는 151명으로 2007년 37명, 2006년 55명에 비해 최고 4배 이상 증가했다. 복지부 아동청소년복지과 이영근 주무관은 “미아 찾기 시스템이 매년 강화되고 있는데도 이렇게 미아가 급증한 것은 경제위기로 아이를 기를 수 없게 된 부모가 아이를 두고 떠났기 때문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늘어난 수치는 부모를 잃은 ‘미아’가 아니라 부모가 버린 ‘유기아동’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버려진 아이들은 대부분 보육원 등 양육시설이나 ‘그룹홈’으로 불리는 공동생활가정에 입소한다. 최근엔 어린시절을 시설에서 보내는 것이 성장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목소리가 높아 입양이나 소규모 그룹홈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그러나 매년 입양 건수는 줄어드는 추세고, 그룹홈은 올해부터 복지부의 통계 대상이 됐을 정도로 걸음마 단계다. 한국아동정책연구소 이향란 소장은 “어린시절 가족 해체를 경험한 아이들이 적절한 보호를 받지 못하면 10년, 20년 후에도 정신적 상처가 남을 수 있다”며 “경제위기 때마다 늘어나는 요보호아동에게 정신적 안정을 줄 수 있는 소규모 시설과 입양 등에 대한 지원이 확대돼야 한다”고 말했다.
남윤서 기자 bar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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