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공부]우리학교 공부스타/연세대 의예과 공순행씨

  • 입력 2009년 5월 12일 02시 57분


‘1점 하락=1만원 이상 손실’ 절박한 각오로 재수 했어요

<“어머니가 어떻게 대주신 학원비인데…”>

“설마! 연세대 의예과에 네가 합격했다는 게 사실이냐?”

2009학년도 대입이 최종 마무리된 뒤 공순행 씨(20)가 고교 선생님과 친구들로부터 숱하게 들었던 말이다. 사실 그럴 만도 했다. 공 씨는 한때 원하는 공부만 골라 하는 ‘공부 편식증’ 학생이었다. 이 때문인지 학년이 올라갈수록 성적이 계속 떨어지는 현상이 일어났다.

서울 마포고에 입학해 반 배치고사에서 전교 6등을 차지했다. 하지만 3학년 성적은 전체 250명 중 80등 수준. 한 차례 대입에 실패한 뒤 그는 지난해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화학I 1문항, 생물I 2문항을 빼고 전 과목에서 만점을 받아 연세대 의예과에 합격했다.

○ 아버지는 내 영혼의 원동력

“재수할 때를 제외하곤 학원을 다녀본 일이 없어요.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제 유일한 선생님은 아버지셨거든요. ‘엄마’ ‘아빠’라는 말을 뗀 순간부터 모든 것을 아버지가 가르쳐주셨죠. 어쩌면 평생 나누어줄 사랑을 어린 시절에 다 주고 가신 게 아닐까 싶어요.”

전자공학을 전공한 아버지는 퍼즐이나 논리 게임을 통해 수학의 기초를 가르쳐줬다. 장난감을 조립할 땐 설명서를 그대로 따라하지 않고 구상도를 직접 작성해가며 공간 개념을 익히도록 했다. 공부를 강요하기보다는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자연스럽게 지식을 쌓도록 한 것이다.

“세상은 넓으니 하고 싶은 일을 찾아 그 일을 하라”는 게 부모의 교육철학이었다. 부모는 그가 하는 일이라면 뭐든지 적극 밀어줬다. 어머니는 “편견 없이 친구들을 두루 사귈 수 있어야 한다”면서 문제아 친구들도 수시로 집에 초대해 함께 시간을 보내도록 했다.

공 씨는 수업시간에 날카로운 질문을 하기로 유명했다. 아버지 덕분에 수학, 과학 분야에서 재능을 보였고 성적은 늘 100점이었다. 원리를 이해하거나 새로운 해결책을 찾아내는 과정에서 더 큰 만족을 느꼈다. 반장은 늘 그의 차지였다.

초등학교 5학년 때, 그의 아버지는 끔찍이 아끼던 외동아들을 남겨두고 과로로 인한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마흔 직전에 어렵게 얻은 아이였기에 회사일이 끝나면 곧바로 집에 와 많은 시간을 함께했던 아버지의 죽음은 충격 그 자체였다.

그 뒤부터 공 씨의 얼굴에선 웃음을 찾을 수 없었다. 학급에서 누구보다도 명랑한 학생이었는데 말이다. ‘나는 가장이다’ ‘내가 어머니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그의 머릿속을 꽉 채워갔다. 학교수업을 빼먹기도 했고 멍하니 보내는 날도 많았다.

○ 공부 편식증은 대입 실패로

중학교에 입학해 새로운 친구를 만나면서부터 공 씨는 조금씩 밝은 모습을 되찾았다. 조용하면서도 어른스러운 성격의 친구는 공 씨의 아픔을 잘 어루만져 줬다. 둘은 ‘나중에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인생의 소중한 가치는 무엇인지’ 얘기를 나누며 많은 시간을 보냈다. 손에 잡히는 대로 소설이나 과학책을 바꿔 읽기도 했다.

자신을 믿고 의지하는 어머니를 바라보면 공부를 소홀히 할 수만도 없었다. 수업시간에 충실했고 벼락치기 전략을 통해 전교 5등 안팎의 성적을 유지했다. TV나 오디오를 아버지와 함께 고치며 전자기기의 원리와 기능을 습득한 덕분에 과학지식은 또래 친구들에 비해 훨씬 앞서갔다. 국어성적도 뛰어났고 각종 글짓기 대회에서 상도 탔다.

공 씨는 단지 시험 준비를 위해서가 아니라 하고 싶은 분야를 찾아 깊이 파고드는 타입이었다. 중3 땐 수학공부 재미에 푹 빠져 ‘수학의 정석’ 교재를 구입해 고1 수학과정을 혼자서 끝냈다. 단, 재미가 없다고 판단되면 아예 눈길조차 두지 않았다.

고교 배치고사에서 전교 6등을 차지했던 그의 1학년 1학기 성적은 전체 250명 중 25등 안팎. 관심 있는 분야는 수업시간에 배우지 않거나 시험범위가 아니어도 상세히 공부한 반면, 관심 없는 분야는 아예 책도 펴지 않았다. 예를 들면 영문법을 익히거나 단어를 외우는 대신 영어소설을 읽는 식이었다. 전 과목 평균 90점대였던 성적은 2학기 들어 80점대로 떨어졌다.

2학년 성적은 전교 50등, 3학년 땐 80등으로 밀려났다. 학교 선생님들은 ‘서울 소재 대학에 지원해볼 수 있는 성적’이라며 편중된 공부방식에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수능 성적은 모의고사 성적에 비해 전 영역에서 한두 등급 더 낮게 나왔다. 심지어 외국어영역은 5등급을 받았다. 대학 진학에 실패한 뒤 비로소 자신이 너무 자만했고 어머니의 기대를 무너뜨렸다는 사실에 절망했다.

○ 점수 1점 하락은 1만 원 손실과 같았다

2008년 1월 1일, 공 씨는 고민 끝에 재수를 결심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넉넉지 않은 형편인데도 공부를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응원해준 어머니 덕분이었다. 그는 규칙적인 생활과 입시 정보를 얻기 위해 재수학원에 등록했다.

“좋은 대학에 진학하는 것만이 제가 어머니를 기쁘게 해드리는 일이었어요. 재수 비용을 따져보니 만만치 않더라고요. ‘점수 1점은 1만 원 이상의 가치’라는 절박한 심정으로 공부를 시작했죠.”

먼저 6월 전까지 개념 공부를 끝내기로 하고 주요과목 위주로 하루 목표량을 설정했다. 오전에는 학원수업 대신에 수학I 20문항, 수학II 20문항, 미적분 10문항 등 매일 50문항씩 풀었다. 모르는 문제라고 판단되면 곧바로 그 다음 문제로 넘어갔다. 한 문제에 매달려 시간을 허비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점심시간을 활용해 틀린 문제와 모르는 문제를 하나씩 짚어가며 풀었다.

화학, 생물과목은 매주 두단원씩 문제집을 풀면서 주요 개념을 노트에 써가며 암기했다. 처음에는 전 단원을 푸는 데 8주가량 걸렸으나 반복할 때마다 걸리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가장 자신 있던 물리과목은 2주일 만에 문제집을 다 풀고 틀린 문제 위주로 계속 반복 학습했다. 문제는 외국어영역. 그는 외국어영역 성적이 우수한 친구에게 그 비결을 캐물었다. ‘영어지문을 많이 접하면 자주 나오는 단어와 문장 구조에 자연스럽게 익숙해진다’는 게 친구의 설명이었다. 공 씨는 매일 14개의 영어지문을 읽으면서 새로운 단어에 친숙해지도록 했다. 요약된 문법책을 바탕으로 기본 문법을 머릿속에 집어넣었다. 영어 듣기는 틀리는 문제 유형을 반복했을 뿐 아니라 집중력을 높이려고 노력했다.

6월 이후는 수능 시간표에 맞춰 공부했다. 언어와 수리영역은 매일 50문항, 외국어영역은 15문항, 과학탐구영역은 40문항씩 풀었다. 자연계 난도가 높아질 것을 대비해 수학, 물리I·II는 심화학습을 병행했다. 그리고 9월 이후에는 최근 5년간 기출문제 풀이에 집중했다.

“제 꿈은 인공두뇌를 연구하는 거예요.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인공지능연구소에 가서 공부해보고 싶어요. 이제부터는 뭐든지 제 힘으로 해결해 나가야죠. 학교생활과 아르바이트로 바쁜 일상이지만 행복해요.”

박은정 기자 ejpark@donga.com

※ ‘우리학교 공부스타’의 주인공을 찾습니다. 중하위권에 머물다가 자신만의 학습 노하우를 통해 상위권으로 도약한 학생들을 추천해 주십시오. 동아일보 교육법인 ㈜동아이지에듀. 02-362-5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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