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철의 대치동 통신]<6>강남을 위한 변명

  • 입력 2009년 5월 13일 02시 54분


편견은 깨지기 위해 존재한다. 필자에게 강남 하면 졸부(猝富)와 교육열, 그리고 버릇없는 아이들이 떠오르던 시절이 있었다. 1990년대 초 신문사 사회부 기자 시절 강남경찰서를 출입하면서 얻은 편견이다. 압구정동 로데오거리 등을 오가면서 본 젊은이들의 모습은 몹시 실망스러웠다.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상표 달린 옷을 걸치고 고급차를 몰며 경박한 태도로 사람을 대하는 식이었다. 내 자식은 절대 강남에서 키우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한 것도 이때였다.

10년이 지나 다시 이들과 부대낄 기회를 갖게 되었고 6년째 만남을 지속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이제 졸부의 버릇없는 아이들로 보이지 않는다.

수년간 사치스러운 아이들을 거의 보지 못했다. 그런 아이들이 아주 없는 건 아니지만 그 정도는 다른 곳에 가도 접할 수 있다. 용돈이 매우 적다는 사실도 놀라웠다. 이들은 ‘학원비가 많이 드니 절약하라’는 부모 말을 귀에 못 박히도록 듣는다.

대부분 예의도 바르다. 성적뿐 아니라 타인을 대하는 태도 면에서도 흠 적은 아이들을 키우기 위한 부모의 노력 덕분일 게다. 물론 이마저도 자녀의 성공적 사회적응을 위한 ‘맞춤형 인성교육’으로 폄하할 수 있겠다. 여하튼 이제 필자에게 강남 아이들은 성공한 엘리트 부모를 뒀을 뿐인 평범한 우리의 아이들로 다가온다.

편견이 빗나가지 않은 것은 교육열뿐이다. 강남 아이들은 미국 월가의 젊은 금융인들 못지않게 바쁘다. 샌드위치로 끼니를 때우며 오늘도 학원을 오간다. 하지만 사교육으로 무장한 이들이 진정 경쟁력이 있는지는 의문이다. 강사의 ‘요점 정리’에 홀려 자기주도적 학습과는 너무 멀리 지내기 때문이다.

기억에 남는 중학생 제자가 있다. 부모는 명문대 법대와 치대를 나온 교수와 의사였다. 사교육이라곤 구경도 못해 본 지방 출신이었다. 방학이 되면 아이는 10개나 되는 학원 강의를 들었다. 그런데도 성적은 중상위권에 불과했다. 부모는 이를 못 견디고 수강 과목을 늘리려 했다. 어머니에게 “학원을 반으로 줄이면 성적이 두 배로 올라갈 것”이라고 호소했지만 그리 귀담아듣지 않았다.

필자가 보기에 사교육의 약효는 오래가지 못한다. 고등학교 2, 3학년만 되면 내리막길을 걷는 아이들을 많이 보아왔다. 쏟아 부은 시간과 비용을 감안하면 강남 아이들의 명문대 진학률은 결코 높은 게 아니다.

D외고를 나온 강남 아이들의 경우 미 명문대 진학률은 높지만 대학원 진학 때는 그리 신통치 않다는 얘기도 종종 듣는다. 스스로, 그리고 창의적으로 공부하는 습관이 없기 때문이다. 지인인 고려대 의대 교수는 그의 강남 제자들을 이렇게 평한다. “요점만 알려 하지 전체를 보려는 우직함이 없어 뛰어난 성취도를 보여주지 못한다. 슈바이처가 되려는 아이들은 없고 성형외과 지망생만 있다.”

문철 메가로스쿨 교수(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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