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형사립고를 준비하는 학교들이 수업료 딜레마에 빠졌다. 교육과학기술부가 자율형사립고에 일반계고보다 등록금을 3배까지 받을 수 있도록 했지만 사학재단은 “더 올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시교육청은 12일 확정 발표한 ‘자율형사립고 운영계획’을 통해 학교장이 자율적으로 수업료를 결정할 수 있도록 했다.
2009년 현재 서울시내 일반계고 수업료는 공사립 모두 연간 145만800원이다. 자율형사립고는 435만2400원까지 받을 수 있게 되는 셈이다. 수업료가 자율화돼 있는 외국어고도 이 수준에서 받는다.
하지만 사립학교 교장들은 “145만 원으로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실제로는 600만 원 정도 들어간다고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나머지 450여만 원은 ‘재정결함보조금’을 통해 국고에서 지원받고 있다는 논리다.
고교 평준화가 도입되기 전에는 사립학교가 공립학교보다 수업료가 비쌌지만 평준화가 도입되면서 공사립 모두 공립학교 수준으로 낮췄다. 이로 인해 사학재단에 재정적 손실이 생기면서 정부에서 사립재단에 지원하는 돈이 재정결함보조금이다.
서울시교육청이 서울지역 308개 사립 중고교에 1년간 지원하는 재정결함보조금은 8000억 원 선. 실제 재정결함보조금은 재단전입금 수준에 따라 학교별로 차이를 보이지만 단순 평균을 내면 학교 한 곳에 26억 원 수준이다. 재정결함보조금은 사립학교가 자율적으로 수업료를 정할 수 없는 데 대한 보상 차원에서 정해진 것이기 때문에 수업료를 자율화한 국제중, 외국어고, 자립형사립고 같은 학교는 재정결함보조금을 받지 못한다. 현재 재정결함보조금을 받는 일반계고도 자율형사립고로 지정되면 지원이 중단된다.
자율형사립고로 지정되려면 재단전입금을 수업료 및 입학금의 5% 이상으로 늘려야 한다. 이를 금액으로 환산하면 2억∼3억 원밖에 되지 않는다. 현재 수준으로 재단 재정을 유지하려면 20억 원 이상을 수업료에 의존하는 수밖에 없다. 자율형사립고 선정 심사 때 수업료는 평가 대상 중 하나이기 때문에 무조건 높은 금액을 책정할 수도 없다.
한 사립학교 교장은 “현재도 학생 부담금보다 4배 가까운 돈을 들여야 교사들 월급을 주고 학교 운영이 가능하다”며 “현재 자립형사립고 대부분도 교육청의 우회 지원이 없으면 존립 자체가 어려운 형편”이라고 주장했다. 다른 교장도 “수업 품질이 확보되지 않으면 누가 비싼 돈 들여서 자율형사립고에 보내려 하겠느냐”며 “실제 수업에 들이는 비용을 계산해 수업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국가 지원이 전면 중단되는 만큼 학교 자율성을 최대한 존중해주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한국사립중고등학교법인협의회 관계자는 “고교 평준화를 지지하는 이들은 ‘기회의 평등’을 강조하지만 이제 ‘자본의 평등’이 더 중요하다”며 “자율형사립고에 지원하던 재정결함보조금을 저소득층 지원에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고민하는 것이 ‘자본 평등’을 이루는 길”이라고 주장했다. 교육과학기술부 발표대로 100개 사립고가 자율형사립고로 지정되면 재정결함보조금 2440억 원을 별도 예산으로 활용할 수 있다.
자율형사립고가 괜한 엄살을 부린다는 주장도 나온다. 한 외고 관계자는 “우리도 재정결함보조금 없이 수업료만으로 학교를 꾸리고 있지만 운영에 아무 문제가 없다”며 “결국 재단전입금 비율을 5% 이상으로 높여야 한다는 데 대한 불만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황규인 기자 ki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