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하면 마음은 늘 19세, 해마다 두분 모시고 모임”
진명여고 동창들의 보은
《‘스승의 은혜는 하늘 같아서/우러러 볼수록 높아만지네… 아아 고마워라 스승의 사랑/아아 보답하리 스승의 은혜.’ 세상을 떠난 장영희 서강대 교수와 제자들의 끝나지 않은 사랑, 졸업 후 50년 지났어도 수십년째 두 달에 한 번씩 선생님을 모시는 할머니 제자들…. 스승의 날을 맞아 스승의 깊은 사랑을 되돌아보게 해주는 감동적인 사연을 소개한다.》
“자, 수업 시작.”
단정히 빗어 넘긴 단발머리에 새하얀 칼라를 단 교복을 입은 여고생들이 교탁 뒤에서 키득거렸다.
“선생님, 영자가 선생님 좋아한대요.”
얼굴을 붉히고 헛기침만 해대는 선생님을 보고 말괄량이 여고생들이 까르르 웃었다.
벌써 50년 전이다. 당시 열아홉 살 여고생들은 이제 칠순의 할머니가 됐다. 그래도 선생님과 함께하면 마음만은 언제나 열아홉이다. 스승의 날을 하루 앞둔 14일 1959년 진명여고 졸업생 모임 ‘자하회’ 회원들이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한 일식집에 모였다. 김동환 선생님(82)과 민병찬 선생님(85)을 모시고 동기 30여 명이 모임을 가져온 지 20년이 넘었다. 졸업 후 동창들끼리만 가져오던 모임에 1989년부터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선생님을 모셨다.
성실한 여고생이었던 박명순 씨(69)는 시집을 가서 아들 둘을 낳고, 손자를 봤다. 전교를 헤집고 다니며 가는 곳마다 웃음을 뿌렸던 김종님 씨(69)는 지금의 남편에게 반해 미국 유학의 꿈을 접고 주부가 됐다.
“선생님과 같이 늙는다”고 하지만 아직도 선생님 앞에서는 투정을 부리는 여고생이다. 선생님도 흰머리의 제자들이 아직 여고생으로 보이기는 마찬가지. 동창회 모임에서 “종님이 어디 갔니. 빠진 사람 없는지 다시 챙겨 봐”하며 인원 점검을 하는 모습은 50년 전 그대로였다. 2년 전 심장병 수술을 받고 꾸준히 약을 먹고 있지만 “이 약보다 제자와의 만남이 보약”이라는 김동환 선생님의 말에 칠순을 바라보는 제자들의 눈가에는 이슬이 맺혔다.
50년 전 국어, 공민(지금의 사회) 과목을 가르쳤던 선생님들은 이제 삶의 지혜를 가르친다. “너희들 남편하고 싸울 때가 있지? ‘그래 그래 당신이 잘했소’ 하면 가정이 행복한 법이야.” 제자들은 노트 필기도, 시험도 없는 강의라 선생님의 강의가 더 좋단다. “우리도 할머니인데 평생을 살아도 선생님께는 배울 게 아직 많아.”
선생님과 제자들은 아직도 모임 전날이면 소풍 가기 전처럼 마음이 설렌다. 선생님은 내일 제자들을 만날 때 입을 양복을 다시 살펴보고, 제자들은 무슨 이야기로 선생님을 웃겨드릴까 고민하다 잠을 설친다.
“우리가 언제까지 선생님 모실 수 있을지 모르지만 끝까지 자랑스러운 선생님으로, 귀여운 제자로 모임을 이어갈 겁니다.”
신민기 기자 mink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