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제도 개선 힘쓸때” 신중론 우세

  • 입력 2009년 5월 15일 02시 56분


14일 오후 6시 반경 서울중앙지법 단독판사들이 재판개입 논란을 불러일으킨 신영철 대법관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울종합법원청사 1층 대강당으로 삼삼오오 입장하고 있다. 홍진환 기자
14일 오후 6시 반경 서울중앙지법 단독판사들이 재판개입 논란을 불러일으킨 신영철 대법관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울종합법원청사 1층 대강당으로 삼삼오오 입장하고 있다. 홍진환 기자
서울 중앙-남부지법 단독판사회의

申대법관 사퇴요구 소수에 그쳐

“재판권 침해”엔 의견 일치

신영철 대법관의 재판 개입 논란을 둘러싸고 14일 서울중앙지법과 서울남부지법에서 잇따라 열린 단독판사회의에서 신 대법관의 사퇴를 촉구하지 않기로 결론이 나면서 조만간 이번 사태가 진정될 것으로 보인다.

국내 최대 법원인 서울중앙지법의 단독판사 88명은 이날 단독판사회의에서 신 대법관이 대법관으로서 직무를 수행하기에는 적절하지 않지만, 사퇴를 요구하지는 않기로 했다. 이날 서울남부지법에서 열린 단독판사회의에서도 “(구두로 엄중 경고조치한) 대법원장의 결정을 받아들이자”는 신중론이 우세했다.

13일 이용훈 대법원장으로부터 구두로 ‘엄중 경고’를 받은 신 대법관이 공식 사과하면서도 사퇴의사를 밝히지 않자 법관 경력 10년차 안팎으로 구성된 단독판사들은 판사회의를 소집해 이 문제를 다시 논의하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 단독판사들은 14일 오후 6시 반부터 서울법원종합청사 1층 대강당에 모여 미리 준비한 김밥으로 저녁식사를 하며 5시간 넘게 난상 토론을 벌였다.

단독판사들은 신 대법관이 대법관으로서 업무를 수행하기에는 적절치 않다는 데 대체로 의견이 일치했다. 이들은 표결을 통해 압도적 다수로 “신 대법관이 개별 사건을 임의 배당하고 사건 처리를 독촉한 것은 법원장의 재량권을 넘은 재판권 침해”라고 의견을 모았다.

하지만 신 대법관의 거취문제에 대해서는 사퇴 촉구를 명시하자는 주장에는 반대 의견이 훨씬 많았다. 사퇴를 요구하는 쪽은 “신 대법관의 사과만으로 부족하다”며 “사태 수습을 위해 스스로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신중론을 편 쪽에서는 “이번 사건으로 앞으로 법원 지휘부가 함부로 재판에 관여할 수 없게 됐으며 신 대법관도 이미 씻을 수 없는 불명예를 얻었다”며 “이제는 제도개선에 힘을 모을 때”라고 반박했다.

이처럼 대부분의 단독판사가 신 대법관의 행위를 부적절하게 보면서도 사퇴까지 요구하지 않는 것은 자칫 이번 사건이 사법부 전체를 흔들 수 있는 폭발력이 있다는 인식 때문이다. 서울남부지법 단독판사 29명도 이날 오후 전체회의를 열고 신 대법관의 행위는 위법하다고 인식을 같이했지만 사퇴 촉구에는 반대하는 판사가 더 많았다. 서울동부지법과 서울북부지법 단독판사들도 과반수가 판사회의를 요구해 15일 판사회의를 연다.

8일 법원 윤리위가 신 대법관에 대해 “징계할 만한 사안이 아니다”라고 결론을 내린 뒤 법원 내부통신망 게시판에는 윤리위의 결정을 비판하고 신 대법관의 사퇴를 촉구하는 일부 소장 판사의 글이 잇따랐다.

그러나 12일 법원 내 개혁 성향 법관으로 통하는 정진경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가 사퇴를 반대하는 글을 처음 올리자 상황은 다소 달라졌다. 사퇴 촉구에 반대하는, 침묵하던 다수가 의견을 속속 내게 된 것. 정 부장판사는 13일 다시 올린 글에서 “판사가 법이 금지한 공무원의 집단행동에 들어간다면 앞으로 관련 사건을 어떻게 재판할 수 있느냐”며 집단행동 자제를 요청했다. 이에 대해 “동의한다”는 내용의 댓글이 10여 건 이어졌다. 이 글은 법관전용 게시판에 올려졌으며 하루사이 조회 수가 1100건을 넘었다.

법원 핵심 관계자는 “법관의 다수를 차지하는 단독판사 이하의 경우 현재까지 사퇴의견과 반대의견 비율이 6 대 4 정도로 갈리며, 반대로 지법 부장판사들은 2 대 8, 고법 부장판사 이상은 1 대 9 정도로 나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이종식 기자 bell@donga.com

황형준 기자 constant25@donga.com

::단독판사

재판부를 혼자 독립적으로 구성하는 1심 재판장을 뜻한다. 배석판사로 5∼8년 일한 뒤 지방법원의 단독판사가 되며, 30대에서 40대 초반이 대부분이다. 이 가운데 서울 중앙지법 형사단독판사들은 예전부터‘서울시장 자리와도 바꾸지 않는다’고 할 정도로 독립성과 자존심이 강하다. 지난해 사건 임의배당 등을 문제 삼아 신 대법관에게 항의한 것도 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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