申대법관 사퇴요구 소수에 그쳐
“재판권 침해”엔 의견 일치
신영철 대법관의 재판 개입 논란을 둘러싸고 14일 서울중앙지법과 서울남부지법에서 잇따라 열린 단독판사회의에서 신 대법관의 사퇴를 촉구하지 않기로 결론이 나면서 조만간 이번 사태가 진정될 것으로 보인다.
국내 최대 법원인 서울중앙지법의 단독판사 88명은 이날 단독판사회의에서 신 대법관이 대법관으로서 직무를 수행하기에는 적절하지 않지만, 사퇴를 요구하지는 않기로 했다. 이날 서울남부지법에서 열린 단독판사회의에서도 “(구두로 엄중 경고조치한) 대법원장의 결정을 받아들이자”는 신중론이 우세했다.
13일 이용훈 대법원장으로부터 구두로 ‘엄중 경고’를 받은 신 대법관이 공식 사과하면서도 사퇴의사를 밝히지 않자 법관 경력 10년차 안팎으로 구성된 단독판사들은 판사회의를 소집해 이 문제를 다시 논의하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 단독판사들은 14일 오후 6시 반부터 서울법원종합청사 1층 대강당에 모여 미리 준비한 김밥으로 저녁식사를 하며 5시간 넘게 난상 토론을 벌였다.
단독판사들은 신 대법관이 대법관으로서 업무를 수행하기에는 적절치 않다는 데 대체로 의견이 일치했다. 이들은 표결을 통해 압도적 다수로 “신 대법관이 개별 사건을 임의 배당하고 사건 처리를 독촉한 것은 법원장의 재량권을 넘은 재판권 침해”라고 의견을 모았다.
하지만 신 대법관의 거취문제에 대해서는 사퇴 촉구를 명시하자는 주장에는 반대 의견이 훨씬 많았다. 사퇴를 요구하는 쪽은 “신 대법관의 사과만으로 부족하다”며 “사태 수습을 위해 스스로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신중론을 편 쪽에서는 “이번 사건으로 앞으로 법원 지휘부가 함부로 재판에 관여할 수 없게 됐으며 신 대법관도 이미 씻을 수 없는 불명예를 얻었다”며 “이제는 제도개선에 힘을 모을 때”라고 반박했다.
이처럼 대부분의 단독판사가 신 대법관의 행위를 부적절하게 보면서도 사퇴까지 요구하지 않는 것은 자칫 이번 사건이 사법부 전체를 흔들 수 있는 폭발력이 있다는 인식 때문이다. 서울남부지법 단독판사 29명도 이날 오후 전체회의를 열고 신 대법관의 행위는 위법하다고 인식을 같이했지만 사퇴 촉구에는 반대하는 판사가 더 많았다. 서울동부지법과 서울북부지법 단독판사들도 과반수가 판사회의를 요구해 15일 판사회의를 연다.
8일 법원 윤리위가 신 대법관에 대해 “징계할 만한 사안이 아니다”라고 결론을 내린 뒤 법원 내부통신망 게시판에는 윤리위의 결정을 비판하고 신 대법관의 사퇴를 촉구하는 일부 소장 판사의 글이 잇따랐다.
그러나 12일 법원 내 개혁 성향 법관으로 통하는 정진경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가 사퇴를 반대하는 글을 처음 올리자 상황은 다소 달라졌다. 사퇴 촉구에 반대하는, 침묵하던 다수가 의견을 속속 내게 된 것. 정 부장판사는 13일 다시 올린 글에서 “판사가 법이 금지한 공무원의 집단행동에 들어간다면 앞으로 관련 사건을 어떻게 재판할 수 있느냐”며 집단행동 자제를 요청했다. 이에 대해 “동의한다”는 내용의 댓글이 10여 건 이어졌다. 이 글은 법관전용 게시판에 올려졌으며 하루사이 조회 수가 1100건을 넘었다.
법원 핵심 관계자는 “법관의 다수를 차지하는 단독판사 이하의 경우 현재까지 사퇴의견과 반대의견 비율이 6 대 4 정도로 갈리며, 반대로 지법 부장판사들은 2 대 8, 고법 부장판사 이상은 1 대 9 정도로 나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이종식 기자 bell@donga.com
황형준 기자 constant25@donga.com
::단독판사
재판부를 혼자 독립적으로 구성하는 1심 재판장을 뜻한다. 배석판사로 5∼8년 일한 뒤 지방법원의 단독판사가 되며, 30대에서 40대 초반이 대부분이다. 이 가운데 서울 중앙지법 형사단독판사들은 예전부터‘서울시장 자리와도 바꾸지 않는다’고 할 정도로 독립성과 자존심이 강하다. 지난해 사건 임의배당 등을 문제 삼아 신 대법관에게 항의한 것도 이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