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동부지법과 서울북부지법에서 신영철 대법관의 재판 개입 논란을 논의하기 위한 단독판사회의가 잇따라 열렸다. 서울동부지법은 단독판사 16명과 서울북부지법 23명의 단독판사들은 각급 법원 회의실에 모여 “신영철 대법관이 더는 대법관의 직무를 수행하기에 부적절하다”고 의견을 모았다. 그러나 두 법원 단독판사 모두 “공식적으로 사퇴를 촉구한 것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14일 서울중앙지법 단독판사들이 내린 결론과 같은 취지다.
이처럼 상당수의 단독판사가 신 대법관의 직무 수행을 부적절하게 생각하면서도 정작 사퇴 촉구를 주저하는 이유는 사퇴 촉구가 자칫 사법부 전체를 흔들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신 대법관 스스로가 결단을 내려달라는 의미도 담겨 있다.
서울중앙지법 단독판사회의에서는 초반부터 일부 강경파 판사가 사퇴 촉구를 표명하자고 주장해 논란을 빚었다. 그러나 대다수 판사는 “헌법에 보장된 법관의 지위를 스스로 흔들면 안 된다”는 등의 이유로 ‘사퇴 촉구’란 표현을 쓰지 말자고 맞섰다. 결국 소모적 논쟁을 끝내자며 사퇴 촉구를 직접 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그 대신 오후 11시경부터 신 대법관의 직무 수행이 적절한지 논의에 들어갔고 수차례 거수 표결 등을 통해 ‘부절적하다’는 의견이 ‘적절하다’는 의견보다 2배 정도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밤 12시쯤 결의문 문구를 다듬고 박수로 회의를 끝내려 할 때 일각에서 회의 정족수 문제가 불거졌다. 대법원 규칙상 전체 단독판사 116명 중 절반이 넘게 참석해야 판사회의가 유효한데 한두 명씩 자리를 떠나 마지막 순간에는 참석자가 과반수에서 한 명이 모자란 57명이었다. 한 판사는 “사퇴론 반대 판사들이 일부 자리를 떠난 채 표결이 이뤄졌지만 대세에 지장이 없는 데다 ‘신 대법관의 직무 수행 부적절’ 의견은 결의문에 넣지 않기로 해 항의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신 대법관의 직무수행은 부적절하지만 사퇴 촉구는 하지 않았다’는 애매한 결론이 나오게 됐다. 한 단독판사는 “법관 의견 모두를 담을 수 있는 결과를 내다 보니 보는 사람마다 해석의 차이를 낳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밝혔다.
사퇴 촉구를 반대한 판사 중 일부는 내부 압력에 의해 신 대법관이 사퇴하면 ‘대법원장 책임론’으로 사태가 번져 사법부 전체가 정치 바람에 휘말릴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또 “대법관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스스로 결단할 기회를 드린 것”이라고 밝혔다.
18일에도 서울가정법원과 부산지법 인천지법 등에서 회의가 열리는 등 단독판사들의 임시회의는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한편 대법원은 사법권 독립 방안 등 제도개선을 모색할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기로 했다. TF는 재판권의 범위와 내·외압에 의한 재판 독립 침해를 구제하는 방안 등을 논의해 내년 9월 최종 보고서를 내놓기로 했다.
이종식 기자 bel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