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앞 카페인 ‘사주나라’. 자영업을 하는 박모 씨(41)는 굳은 얼굴로 이 카페를 찾았다. 박 씨는 답답한 마음을 역술인 김진섭 씨(42)에게 털어놓기 시작했다. 경기가 워낙 안 좋아 장사가 잘 안됐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것저것 꼬이는 문제가 많다는 고민을 이야기했다. 박 씨는 일이 잘 풀리지 않아 머리가 복잡해지면 종종 이화여대 앞을 찾는다. 이곳에는 ‘사주카페’가 많아 김 씨와 같은 역술인들을 부담 없이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 편하게 찾을 수 있는 사주카페 천국
20년 경력의 베테랑 역술인 김 씨는 박 씨의 생년월일과 이름을 받아 적고 한참을 고민했다. 몇 분이 지난 뒤 김 씨는 “자영업보다는 직장을 한 번 구해 보는 게 어떻겠느냐”라며 “힘든 시기이지만 욕심 부리지 않고 천천히 실력을 닦으면 좋은 날이 곧 올 것”이라고 말했다. 얘기가 깊어질수록 박 씨의 표정은 차츰 밝아졌다. 마치 담임선생님과 학생이 대화를 나누는 분위기였다. 정답은 없었지만 마음을 털어놓는 것만으로도 든든한 힘이 되는 듯했다. 박 씨는 “예전엔 철학원에 가서 점을 보곤 했는데 사주카페가 훨씬 편하게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고 위로도 받을 수 있어 종종 찾는다”고 말했다.
예부터 이화여대 앞은 철학관이 많았다고 한다. 풍수지리적으로 이 지역은 ‘음기’가 강하기 때문이라고 역술인들은 설명한다. 과거 철학관이 많았던 ‘미아리’와 마찬가지다. ‘네오 사주 타로’ 카페를 운영하는 이병주 씨(43)는 “원래 역술인들은 음기가 강한 곳에 모인다”며 “여대가 들어서고 번화하면서 1960, 70년대부터 철학원이 늘어났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 일대의 젊은이들에게 철학원은 쉽게 발걸음하기 어려운 곳이었다. 부적이나 굿을 요구하는 철학원이 많았고 권위적인 데다 분위기까지 낯설었기 때문이다. 비용 또한 만만치 않았다.
이에 이 일대의 젊은 역술인들은 1990년대부터 변화를 모색하기 시작했다. 사주카페를 만들어 간단한 음료와 함께 음악을 즐기며 편하게 상담을 받을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일종의 ‘심리치료사’와 ‘카운슬러’가 되고자 하는 젊은 역술인도 늘어났다. 이 씨는 “역술이라는 것이 원래 정답을 주는 것이 아니라 교감과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위로하는 게 목적”이라며 “친구나 부모에게도 못하는 얘기를 우리한테는 툭 터놓고 할 수 있는 게 장점”이라고 말했다.
○ 사주도 ‘교감’이 있어야
최근엔 젊은이들뿐만 아니라 40, 50대가 손님의 50%에 이를 정도로 많이 찾는다. 중년층들도 가격이 5000원에서 2만 원대로 저렴하고 편한 분위기의 사주카페의 매력을 알게 된 것. 젊은층들은 취업, 궁합 등을 주로 물어보고 중년층들은 자녀, 사업, 재물을 많이 궁금해한다. 현재 이화여대 앞에는 30여 곳의 사주카페가 운영되고 있지만 침체된 경기를 피해갈 순 없었다. 이 씨는 “대부분 경기가 나빠야 사주를 많이 볼 것으로 생각하는데 사람들은 원래 경기가 좋아야 도전을 많이 하게 되면서 운도 알고 싶어 한다”고 설명했다. 게다가 요즘은 인터넷이 발달해 집에서도 쉽게 사주를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씨는 “사주카페는 관상, 손금 등을 통해 역술인과 손님이 서로 교감하면서 더욱 깊이 있게 얘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이 특징”이라며 “생년월일 등 숫자를 중심으로 하는 인터넷 사주와는 비교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유성열 기자 ry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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