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위대가 휩쓸고 간 대전市街 전쟁터 방불

  • 입력 2009년 5월 18일 02시 58분


경찰버스 철망-문짝-돌 나뒹굴어 폭격 맞은듯
대전경찰청장 “민노총 주최 집회 불허하겠다”

“시위대가 휘두른 대나무가 마치 죽창처럼 보였어요.”

16일 오후 화물연대와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대전에서 벌인 시위를 저지하다 부상한 한 의경은 이렇게 말했다. 이날 대전 대덕구 법동 대전동부경찰서 주변 왕복 8차로 도로는 마치 전쟁터를 연상케 했다. 시위대가 끝이 날카로운 3∼4m 길이의 대나무를 경찰을 향해 휘두르고 경찰도 최루탄과 물대포로 진압을 시도하면서 일대가 쑥대밭으로 변했다.

이날 충돌은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당초 집회신고 내용과 달리 박종태 씨의 시신이 안치돼 있는 중앙병원에서 1.7km 떨어진 대한통운까지 행진을 강행하려다 빚어졌다. 경찰은 행진 구간이 신고되지 않은 데다 차량 소통 등에 지장이 있다는 이유로 행진을 저지했다. 그러자 시위대가 경찰을 향해 돌을 던지기 시작했고, 이를 방패로 막던 경찰도 물 대포와 경찰봉으로 응수했다. 이어 대나무에 매단 만장(輓章)을 들고 행진하던 시위대는 ‘박종태 열사여!’ ‘MB정권 심판’ 등이 쓰인 검은색 천을 떼어내고 대나무를 시위도구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시위대가 휘두르는 대나무는 아스팔트 도로와 경찰 방패에 부딪히면서 끝이 날카롭게 변해 저지하는 경찰을 위협하는 흉기로 둔갑했다.

경찰은 이날 1만여 명의 경찰력을 동원해 시위대를 저지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다친 경찰관과 시위대가 뒤얽혀 인근 병원으로 실려 가는 모습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특히 일부 시위대는 ‘경찰이 과잉 진압을 한다’며 인근에 있는 동부경찰서 진입을 시도하기도 했다. 대한통운까지 시위대가 휩쓸고 간 왕복 8차로 도로는 깨진 경찰 전·의경 버스의 유리창과 철망, 문짝, 돌 등이 나뒹굴었다.

자신이 사는 아파트에서 이 광경을 지켜본 임모 씨(49·여·대덕구 법동)는 “태어나서 이 같은 광경은 처음 본다”며 “마치 1980년대로 되돌아간 느낌”이라고 말했다. 인근 대덕구 연축동 계족산 중턱에서 식당을 경영하는 이모 씨(54)는 “시위대와 경찰로 주변 도로가 완전히 막히는 바람에 저녁 예약이 모두 취소됐다”며 “누구한테 하소연해야 하느냐”며 울먹였다.

경찰은 시위 현장에서 민주노총 조합원 등 457명을 연행해 대전 5개 경찰서에 분산 수용한 뒤 조사를 벌이고 있다. 경찰은 집회 참가자들이 휘두른 대나무 1000여 개도 압수했다. 이날 시위대가 준비한 대나무는 2000여 개인 것으로 파악됐다.

유태열 대전지방경찰청장은 17일 기자회견을 갖고 “경찰관을 폭행하고 공용물을 파손한 사람 등은 모두 구속 수사하고 집회를 주도한 집행부는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검거하겠다”며 “경찰 피해에 대해선 손해배상을 청구하고 향후 민주노총 및 화물연대가 대전에서 주최하는 집회는 금지 통고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경찰은 이날 시위로 중상자 2명을 포함해 모두 104명의 경찰이 다쳤으며 경찰차량 99대와 진압장비 155점이 파손됐다고 밝혔다.

민주노총은 성명을 통해 “집회 참가자 중 부상자가 50명에 이르며 집회를 끝내고 귀향하는 차량 탑승자도 경찰이 무차별 폭력으로 연행했다”고 주장했다.

대전=이기진 기자 doyoce@donga.com

위기의 민노총, 화물연대를 탈출구 삼나

성폭력 파문-대형사업장 잇단 탈퇴로 동력 잃어

“대정부 연대투쟁 나서겠다”… ‘하투’ 도화선 우려

화물연대의 총파업 결의가 자칫 ‘하투(夏鬪)’로 이어지면서 노동계 전체가 총파업의 소용돌이에 빠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특히 연이은 성폭력 파문과 소속 사업장의 탈퇴로 위기에 빠진 민주노총이 이번 총파업 결의를 계기로 투쟁수위를 높일 것으로 보여 이 같은 전망에 힘이 실리고 있다.

16일 화물연대 조합원 총회 뒤 열린 ‘광주항쟁 29주년 전국노동자대회’에서 임성규 민주노총 위원장은 “모든 역량을 투입해 확실한 투쟁전선을 만들어 승리의 길로 나아가자”고 선언했다. 임 위원장은 “화물연대 총파업 결의를 계기로 본격적인 투쟁의 깃발을 올리고 다음 달 말로 예정된 민주노총 총파업 일정을 앞당기겠다”고 밝혔다. 지난달 말 기자간담회에서 “현장의 분위기가 총파업과 거리가 멀다”고 한 자신의 발언과는 정반대의 내용이다.

성폭력 파문으로 촉발된 도덕성 논란과 인천지하철노조 등 대형 사업장의 잇따른 탈퇴로 약화된 투쟁동력을 이번 박종태 씨 죽음과 화물연대 총파업 결의를 통해 다시 키우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실제 이날 거수방식을 거친 화물연대 총파업 찬반투표는 압도적 찬성으로 통과됐다. 또 전국노동자대회 이후 벌어진 격렬한 시위도 이 같은 달라진 ‘분위기’가 반영됐기 때문으로 보인다.

민주노총은 17일 발표한 성명서에서 “정부와 회사가 대한통운 문제를 일으키고 사태를 악화시킨 주범”이라며 “강력한 대정부 투쟁을 펼치겠다”고 밝혔다. 민주노총은 화물연대의 요구가 관철되지 않을 경우 다른 부문의 사업장과 연대해 총력투쟁에 나설 것을 분명히 했다. 민주노총은 18일 향후 투쟁 일정과 계획을 발표할 예정이다.

이성호 기자 stars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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