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갱이’(날이 작은 호미 형태의 제주 농기구)를 능숙하게 잡았다. 텃밭에 심은 쪽파 주변 ‘검질을 매는’(잡초를 뽑는) 모습이 자연스럽다.
필리핀 출신 이주여성인 델리아 지 파라나소 씨(34). 최근 고향에 다녀온 탓인지 표정이 한결 밝았다. 필리핀 루손지역 누에바에시하에서 친정어머니(87), 언니들과 원 없이 수다를 떨며 시간을 보냈다. 제주에서 준비해간 커피와 모자 등 선물을 안겨드렸다. 3월에 돌아가신 아버지 산소도 다녀왔다. 1999년 결혼한 후 두 번째 방문. 17일 동안의 ‘꿀맛 같은 휴가’는 그동안 지친 몸을 충전하는 데 큰 보탬이 됐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나와서 반겨줬어요. 아버지가 세상을 떠날 때 함께하지 못해 많이 속상했지만 어머니와 언니들이 위로해줬어요. 태어나고 자란 마을이 너무나 정겨웠어요. 다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문득 들기도 했지만 이제 불가능하잖아요. 새로운 삶이 펼쳐졌어요. 지금도 남편을 선택하고 한국에 온 것을 후회하지 않아요.”
○ “필리핀 고향 바나나 그늘이 그리워”
또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그가 보금자리를 튼 곳은 제주시 한림읍 귀덕2리. 반농반어(半農半漁)의 전통이 이어져 내려오는 자그마한 어촌마을이다. 지역주민들은 바다에 일이 없을 때엔 농사를 짓는다. 쪽파를 주로 생산한다. 그도 남편 이학보 씨(45)와 1200m²의 땅을 일구고 있다. 한림읍 명월리 농지 1만5000m²를 임차해 밭벼, 단호박을 심었다. 오전 6시에 일어나 식사를 마치고 농사일을 시작하면 땅거미가 져야 끝이 난다. 저녁 챙기고 일곱 살, 아홉 살짜리 두 아들을 돌보다 보면 훌쩍 시간이 지난다. 오후 10시에 곯아떨어진다.
필리핀에서 부모님이 벼농사를 지었지만 일을 해본 적이 없다. 음식을 만들고 집 안 청소를 하며 도왔지만 논에 나가지는 않았다. 제주에서 밭농사를 처음 접하고 무척 당황했다. 너무 힘들었다. 한여름 이글거리는 땡볕이 너무 미웠다. “고향 마을의 바나나 그늘이 그리웠어요.”
가냘픈 손마디가 어느새 굵어졌다. 손바닥에 굳은살도 박였다. 몇 시간 동안 쪼그려 앉아 검질 매는 일로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팠다. 비가 오는 날이 반갑기만 했다. 그래도 견딜 수 있는 것은 믿음직스러운 남편이 있기 때문이다. 무뚝뚝해도 잘 챙겨주려는 마음을 읽을 수 있다. 결혼을 결심한 것도 남편에게서 단단한 신뢰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너무 힘들어하면 남편이 설거지를 하며 도와준다.
○ “해녀도 좋아…일을 하고 싶어요”
해녀를 해보겠다는 말을 건넸을 때 최고 원군은 남편이었다. 어릴 때부터 물질을 한 시어머니(76)는 최고의 스승이었다.
“제주에 와서 바다를 보게 됐어요. 수영을 해보지 않아서 두려웠지만 밭일보다 나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마음처럼 바다와 친숙해지지 않았지만 기회가 된다면 또다시 도전해보고 싶어요.”
파라나소 씨는 지난해 한림읍사무소와 지역어촌계가 공동으로 지원한 ‘한수풀해녀학교’에 1기생으로 입학했다. 4개월 동안 매주 토요일마다 호흡, 잠수, 해산물 채취 등에 대한 교육을 받았다. 해녀 작업에 몰입하기에는 시간이 너무나 부족했다. 잠수는커녕 바다에서 몸을 추스르기도 쉽지 않았다. 올해 2기 교육생들과 함께 바다에 나가기로 결심했다. 실제 해녀가 되기까지 여러 과정이 필요하지만 포기하기에는 이르다고 생각했다.
굳이 해녀가 아니더라도 다른 일을 해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결혼하면서 중도에 포기한 학업을 잇고 싶다. 그는 산호세 시에서 대학 1년을 다니고 중퇴했다. 컴퓨터 관련 학문을 전공했다. 굳이 전공이 아니더라도 공부에 대한 열정을 갖고 있다.
필리핀에서 화원 아르바이트를 할 때 손에 익은 ‘꽃꽂이’를 전문적으로 배우고 싶기도 하다. 그의 집 마루 한쪽에 조화(造花)로 꾸민 작은 화분이 있다. 필리핀 꽃을 소재로 화려하게 치장했다. 누가 보더라도 솜씨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옷을 차려입고 회사로 출근하는 여성을 보면 너무나 부러워요. 기술을 익혀서 번듯한 회사에 다니는 상상을 자주 해요. 기회가 된다면 어떤 일이라도 해보고 싶어요.”
○ “우리에겐 꿈이 있어요”
한국어에 익숙하지 않은 점은 그의 도전에 최대 걸림돌. 제주에 들어온 뒤 제주대와 복지회관 등에서 한국어를 익혔지만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많다. 제주 방언을 자주 쓰는 시어머니의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해 오해가 생길 때도 있다. 아이들 숙제를 돌봐주지 못할 때는 가슴이 미어진다.
문득 외로움에 젖을 때가 있다. 딸아이를 가졌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필리핀 고향에 사는 친척 조카를 입양하고 싶지만 절차를 몰라 힘들다. 한국 아기들이 외국으로 입양을 많이 나가지만 외국에서 아기를 입양하는 일이 쉽지 않다. 남편이 백방으로 수소문하고 있지만 해결책을 찾지 못했다.
149cm의 단신. 두 아이 엄마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앳된 얼굴. 쑥쑥 커가는 아이들을 보면서 행복감에 젖는다. 꿈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예쁜 집, 편안한 일, 가족의 건강”이라고 꼽으며 밝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제주=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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