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서울고법 판사회의 ‘申대법관 사태’ 중대고비
신영철 대법관의 재판 개입 논란을 놓고 14∼18일 전국 15개 법원에서 연쇄적으로 진행된 판사회의가 19, 20일에는 열리지 않았다. 일단 소강국면으로 접어든 듯한 신 대법관 사태는 박시환 대법관(사진)의 ‘5차 사법파동’ 발언을 둘러싼 논란으로 번지는 양상이다.
박 대법관은 19일 한 언론에 보도된 인터뷰를 통해 전국에서 잇달아 판사회의가 열리는 상황에 대해 “5차 사법파동으로 볼 수 있다. 판사들에게 절차와 규정을 지킬 것을 강조하는 분들도 있는데 4·19와 6월 항쟁도 절차와 규정은 지키지 않았다”고 언급했다. 또 “대법관들이 회의에서 동료 문제라서 추상적으로만 얘기하더라. 몹시 실망스러웠다”고 말했다. 박 대법관은 자신의 발언으로 파문이 일자 19일 오후 법원 내부통신망에 글을 올려 “기자에게 특정 주장에 동조한다는 의사표시를 한 일이 없다. 어느 한쪽을 지지하거나 동조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박 대법관의 주장에 대해 찬반이 엇갈리지만 현직 대법관이 민감한 시점에 소장 판사들을 자극하는 듯한 발언을 한 것은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많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판사는 “대법관이 비공개를 전제로 한 대법관회의 내용을 발설하고 법원 내 혼란을 부추기는 발언을 한 것에 대해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한다”고 비판했다. 변호사단체인 ‘시민과 함께하는 변호사들’은 “박 대법관이 현 상황을 혁명적 상황으로 규정하고 사법 파동을 부추기고 있다”며 “대법원장은 박 대법관을 징계위원회에 회부하라”고 촉구했다. 그러나 서울서부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바른말을 한 것뿐이다. 기사 내용에 어느 한쪽을 편들었다고 할 만한 내용은 없다”고 박 대법관을 옹호했다.
박 대법관은 2003년 대법관 인선 문제에 불만을 품고 사표를 던져 4차 사법 파동에 기폭제 역할을 한 적이 있다. 그는 개혁성향 판사들의 모임인 ‘우리 법 연구회’(1988년 창립)의 초대 회장을 지냈다.
한편 전국 고등법원 중 가장 큰 서울고법의 배석판사들이 신 대법관의 재판 개입 논란을 논의하기 위해 21일 오후 6시 반 법원 회의실에서 판사회의를 연다. 서울고법 배석판사회의 의장인 이규홍 판사는 판사회의 소집 여부를 물은 결과 전체 105명의 배석판사 중 소집 정족수인 5분의 1이 넘는 30명이 회의 개최에 동의했다. 사법연수원 24∼27기 출신인 서울고법 배석판사들은 법관 경력 10년차 안팎으로, 이들의 논의 결과에 따라 사태가 확산될지 아니면 잦아들지 좌우될 것으로 보인다.
신 대법관은 20일 오후 6시경 퇴근길에 대법원 청사 앞에서 두 달여 만에 취재진에 모습을 나타냈다. 신 대법관은 그동안 지하주차장을 통해 출퇴근하고 집무실에서 점심식사를 해결하는 등 외부로 드러나는 것을 피해왔다. 살이 다소 빠진 수척한 모습의 신 대법관은 취재진으로부터 ‘심경이 어떠냐’는 등의 질문이 쏟아졌지만 사진촬영에만 응한 뒤 쉰 목소리로 “다 하셨나요. 목이 아파서, 가겠습니다”라고 말하고 승용차에 올랐다.
이종식 기자 bel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