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 기술독립 산증인
“이젠 환경산업 연구 매진”
“나라를 빼앗기면 식민지가 되듯 기술 자립을 못하면 ‘기술 식민지’가 됩니다. ‘기술 독립국’이 되기 위해 기필코 원자로 계통설계 기술을 우리 것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1986년 12월 14일 대전 유성구 한국원자력연구원. 당시 한필순 원장(77)은 영광원자력발전소 3, 4호기 원자로 계통설계 프로젝트를 맡은 미국 코네티컷 주 컴버스천엔지니어링사로 떠나는 공동설계팀을 환송하면서 “한국형 원자로(경수로)의 탄생은 전적으로 여러분 손에 달렸으니 실패하면 아예 돌아오지 말라”고 말했다. 만세 삼창을 선창하자 눈물을 훔치는 이도 있었다. 공동설계팀의 피나는 노력으로 원자로 계통설계는 3년 만에 완성됐다. 한국형 경수로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한 전 원장은 그에 앞서 ‘원자력 독립’을 위해 경수로 핵연료 국산화 사업을 벌였다. 원자로가 아궁이(난로)라면 핵연료는 연탄에 해당한다. 이 사업에 참여할 외국 회사들을 모집할 때 미국 정부의 반발을 무릅쓰고 미국의 웨스팅하우스사를 탈락시켰다. 기술제공 의지가 없다는 게 이유였다.
한국원자력연구원이 국내 이공계 연구기관 가운데 처음으로 올해 창립 50주년을 맞았다. 한 전 원장이 오늘날 한국이 세계 5위의 원자력 국가로 도약하는 데 중심적인 역할을 했다는 데 이견이 없다. 그는 1982∼1991년 에너지연구소 대덕공학센터 부소장과 한국핵연료㈜ 사장, 한국원자력연구원장을 지내면서 중수로 및 경수로 핵연료를 국산화했고 한국형 원자로를 개발했다. 핵연료의 전량 국산화는 원자력을 통한 전기생산 비율이 40%를 넘는 국내 현실을 감안하면 유전 개발이나 다름없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 전 원장은 정치적으로는 논란이 있지만 전두환 전 대통령이 원자력 기술의 자립에 강한 의지를 가졌다고 회고했다. 미국은 한국의 원자력 기술 개발을 견제하고 있었고 5공화국은 정권의 정통성 시비에 휩싸여 미국의 눈치를 봐야 할 형편이어서 전 정권이 들어서자 “이제 원자력은 끝났다”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상황은 달랐다.
“전 전 대통령은 원자력 자립을 절대 공식적으로 강조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내가 원자력 자립을 위해 하는 일을 장관이 비판하면 조용히 장관을 갈아 치워 버렸어요. 장관들이 그런 분위기를 바로 읽었지요.”
한 전 원장은 육군사관학교를 나온 뒤 서울대와 미국 일리노이대,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에서 물리학 학사 석사 박사 과정을 마쳤다. 1970∼82년 국방과학연구소(ADD) 유도무기 개발단장 등으로 재직하면서 한국형 수류탄과 방탄 헬멧, 벌컨포 등을 개발했다.
그는 1992년 다시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영국 정부 초청으로 하웰원자력연구소에서 환경을 공부했다. 1997년엔 대덕특구에 음식물쓰레기 재활용 벤처기업인 ‘가이아’를 창립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거의 중국에서 살다시피 한다. 중국 정부의 특별초빙을 받아 음식물쓰레기재활용연구센터의 기술본부장 겸 관련 민간회사의 기술자문으로 활동하며 음식물쓰레기를 동물 사료로 활용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냄새가 없고 저비용인 사료 개발이 기술의 핵심.
“21세기에 중요한 환경산업에는 화학, 생물, 기계 등 다양한 학문이 필요해요. 원래 이론물리학을 했지만 종합 과학의 산실인 국방과학연구소와 원자력연구원에서 근무하면서 다양한 학문적 접근 방법을 자연히 터득했어요. 남들은 많은 나이라고 하지만 이런저런 직책을 놓고 연구에 매달리니 아이디어가 새록새록 나오네요.”
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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