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거리 피맛골로 유명한 서울 종로구 청진동. 서민 음식점과 술집이 밀집해 있었으나 도심 재개발로 사라지고 있는 이곳 서울의 중심가 땅을 한 꺼풀 벗기자 조선시대 한양 중심부의 옛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전체 19지구(그래픽 참조)로 구분된 청진동 정비계획 지구 중 23층짜리 고층 건물이 들어설 예정인 1지구(교보문고 옆 KT빌딩 뒤편). 한울문화재연구원(원장 김홍식)이 발굴 중인 이곳에서 조선시대 518년(15∼20세기)의 건물 터들과 우물들, 동(銅)으로 만든 고급 제기 세트, 왕실과 관청에 자기를 공급한 국가 직영 가마인 관요(광주)에서 제작된 백자들을 비롯한 다양한 분청사기와 도기, 봉황무늬 기와 등이 나온 것이다.
동아일보는 최근 발굴이 한창인 이곳을 찾았다. 불과 1m 땅속에 관청의 부속건물로 쓰였을 것으로 보이는 건물 터(18, 19세기)의 주춧돌들이 선명했다. 1지구는 기로소(耆老所·나이 많은 문신을 예우하기 위한 기구), 사복시(司僕寺·궁중의 가마, 말을 관장한 관청) 터와 가까이 있어 관청 유적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 곳이다.
땅 밑 약 4m를 파들어간 곳에서 15, 16세기 건물의 기초를 촘촘히 다진 나무 말뚝이 뚜렷이 드러났다. 주변 하천의 영향으로 지반이 약하자 나무 말뚝으로 보완한 것으로 수백 년 전 조선시대 토목기술의 수준을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다.
조선 후기 민가들이 밀집된 유구(遺構·건축물 흔적)도 눈에 띄었다. 민가의 담 앞에 불과 50cm 정도의 간격을 두고 또다시 담이 있고 이 좁은 길로 들어설 수 있는 쪽문의 기초가 확연했다. 다닥다닥 붙은 집들 사이에 부녀자들이 다닐 수 있게 만든 일종의 ‘비밀 통로’라는 김홍식 원장의 말처럼 역사적 상상력(스토리텔링)을 불러일으키는 흥미로운 유적이다.
특히 1지구에서 발견된 제사 때 술을 따르는 작(爵) 2점과 접시 9점 등 동제 제기 세트는 왕실이나 관청에서 열린 유교 제례와 관련된 유물로 보인다. 임진왜란 이후 사용된 우물 2기, 온돌과 아궁이 등 조선시대의 삶을 보여주는 유적도 가득했다.
조선 초기∼후기의 유적과 유물이 골고루 남아 있어 주거지와 생활문화의 변화를 한눈에 알 수 있는 타임캡슐이 청진동 재개발지역에 숨어 있었던 셈이다. 김 원장은 “청진동은 어디서나 유적이 나오기 때문에 건물을 짓기 전 반드시 발굴을 해 한양 중심부의 시대별 지도를 그려야 한다”며 “역사도시 서울 중심가의 과거를 기록할 마지막 기회”라고 말했다.
종로구청도 청진동 정비계획 지구 전체에 대해 매장문화재가 있는지 지표조사를 할 것을 사업시행자에게 권고하고 있다.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3만 m² 미만 면적의 개발지역은 발굴하지 않아도 되지만 이곳의 역사적 중요성을 감안한 것이다.
현재 발굴이 진행되거나 계획 중인 1지구와 2·3지구, 12∼16지구. 12∼16지구 일부에서는 시험 발굴 시작 1주일 만에 조선시대 건물 터의 기단부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나 1지구 인근의 5지구는 종로구청의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은 채 발굴 없이 공사를 진행 중이다. 종로구청 이병호 문화체육과장은 “문화재가 나오면 구청에 신고하겠다고 했지만 확인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문화도시의 시대에 역사를 잘 간직해야 외국인 관광객에게도 내세울 인프라 구축이 가능하지만 사업자에게 재산권 제한을 무턱대고 강요할 수도 없다”며 “청진동과 피맛골처럼 유적이 많은 도심 지역은 유적이 나와 보존할 경우 문화재청이 사업시행자에게 인센티브를 줘야 한다”고 말했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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